사사기 7:15-25절 /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26.09.16)

2026.09.16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 넘겨주셨느니라”(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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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문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미디안 적진에 들어가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15절에서 기드온은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합니다. 진영으로 돌아와 이렇게 외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드디어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기드온이 누구의 말에 확신을 얻었느냐입니다. 미디안 군사들의 꿈과 해몽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여러번 승리에 대한 말씀으로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디안 병사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일어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말에 의해 움직인 것입니다. 앞서 바락 장군도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드보라가 함께 가야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움직였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으로 분명히 하셨지만 확신으로 행동하지 않다가, 누군가 곁에서 한마디 해 주면 그제야 움직이지 않습니까? 반대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사람의 말 때문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만한 무게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우리 삶은 흔들리게 됩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16절에서 기드온은 작전을 세웁니다.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사람의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라면 칼과 창과 방패를 들어야 하는데, 이들이 든 것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입니다. 이는 전쟁의 승리가 사람의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케 하십니다.

17절에서 기드온이 삼백 명에게 지시합니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작전이 특이하니 자신을 따라서 함께 행동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기드온은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놓습니다. 18절을 보면 외칠 구호를 정해 주는데 이렇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이 전쟁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치르시는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위하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 곁에 나란히 붙여 놓았습니다. 당시 가나안 비문에 보면 바알신과 왕을 같은 위치에 놓고 “바알을 위하라, 왕을 위하라”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자신을 왕처럼, 그리고 하나님과 같은 위치로 놓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2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사들이 외친 말이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입니다. 이런 말이 두 번이나 되풀이된다는 것은 기드온의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 속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며 두 번이나 양털 표적을 구하며 확인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승리가 눈 앞에 다가오자 자기 이름을 하나님과 함께 놓습니다. 결국 기드온은 뒤로 가면서 왕처럼 행세하게 됩니다. 승리가 좋은 것이지만 그를 교만하게 하고 무너지게 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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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전쟁이 시작된 때는 이경 초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밤 10시경입니다. 밤이 깊은 때이고 파수꾼들이 막 교대한 때입니다. 기드온과 함께한 백 명이 진영 근처에 이르러 나팔을 불고 손에 든 항아리를 부숩니다. 세 대가 같은 순간 그렇게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방에서 나팔이 울리고 곳곳에서 불이 솟아오릅니다. 21절에서 삼백 명은 각기 제자리에 섰습니다. 돌진하지 않았습니다. 진영을 에워싼 채 서 있기만 했는데 온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했습니다.

상상이 갑니다. 잠에서 깬 미디안 병사들의 눈에 보인 것은 사방을 두른 불빛이고 귀에 들린 것은 사방에서 울리는 나팔이었습니다. 나팔 하나에 병사 하나가 아니라 나팔 하나에 부대 하나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저들은 자기를 에워싼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22절이 그 까닭을 말합니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미디안 사람들이 서로를 쳤습니다. 어둠 속에서 곁에 있는 자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들 안에 이미 두려움을 심어 두셨습니다. 그 두려움이 밤중의 나팔 소리와 횃불에 극대화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살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너려고 그곳을 향해 도망합니다.

승리의 요인을 살펴보면 작전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삼백 명이 한 일은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제자리에 선 것뿐입니다. 칼을 휘두른 것은 미디안 자신이었고, 그렇게 되게 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22절은 분명하게 “여호와께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했을 때 이스라엘을 덮었던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굴에 숨고 밤에만 움직이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자 이제 그 두려움이 대적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두려움은 상황과 형편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23절에서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 사람들이 소집되어 미디안을 추격합니다. 앞서 집으로 돌려보냈던 이들입니다. 승기가 완전히 잡은 후 이들이 다시 부름을 받습니다. 삼백 명이 13만을 다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4절에서 기드온은 에브라임 온 산지에도 사자들을 보내어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게 합니다. 도망하는 자들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내용은 25절에서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이 사로잡힙니다. 오렙은 갈가마귀라는 뜻이고 스엡은 늑대라는 뜻입니다. 짐승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이스라엘의 곡식을 짓밟다가 이제 붙잡힙니다. 오렙은 어느 바위에서 죽었고 스엡은 어느 포도주 틀에서 죽었는데, 그 뒤로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오렙 바위라 부르고 그 포도주 틀을 스엡 포도주 틀이라 불렀습니다. 그 땅에 승리의 표가 남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움직여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두 번 세 번 말씀하셨는데도 확신으로 행동하지 못하다가 대적의 한마디에 일어섰습니다. 우리도 말씀은 가볍게 듣고 사람의 말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셨는지를 먼저 묻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 곁에 나를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기드온은 승리가 보이자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 곁에 붙였습니다. 그 교만이 훗날 그를 무너뜨립니다. 인정받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높이는 자를 하나님이 낮추시고, 자기를 낮추는 자를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하나님만 높이는 자리에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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