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 악한 영을 보내시매”(23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을 앞세워 형제 70명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요담은 나무들의 비유를 말하고 저주를 남긴 채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22절은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전체를 보면 그가 다스린 곳은 세겜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문제가 터집니다.
23절이 그 문제의 출발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지금까지 사사기는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사사에게 여호와의 영을 부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십니다. 아비멜렉이 한 일과 세겜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해서 한 일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심판의 이유는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그의 손을 도운 세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3년이 지났습니다. 바로 갚지 않으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시는 분이시고, 갚으시는 때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5절에서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세겜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강탈합니다. 아비멜렉과 오가는 사람들을 털어 손해를 입힌 것입니다. 한때 그를 왕으로 세운 사람들이 이제 그를 배반합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등장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듭니다. 26절에서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렀고,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풀면, 에벳은 종이라는 뜻이고, 가알은 역겨움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름을 읽으면서 역겨운 종의 아들이라는 말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들어와 세겜과 아비멜렉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신뢰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얼마 전까지 이들이 따르던 사람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눈이 멀어 형제 70명을 죽인 아비멜렉입니다. 이제 이들이 신뢰하는 사람은 가알입니다. 둘 다 따라서는 안 될 형편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따라갑니다. 하나님을 떠나니 분별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를 멀리해야 할지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 분별이 나를 지키고 내 가정을 지키며 미래를 지킵니다.
가알을 따르는 세겜 사람들은 포도를 거두어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왕으로 세운 사람을 신당에서 저주하고 있습니다. 28절에서 가알이 말합니다.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러면서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기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선동할 때 쓴 것이 바로 혈통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어머니 쪽 형제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제 가알이 자기가 더 가까운 혈통이라고 말합니다. 혈통과 지역 감정으로 세운 자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무너집니다.
●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45절)
30절에서 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합니다. 스불은 아비멜렉의 신복입니다. 스불은 사자들을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세겜의 형편을 알립니다. 그런데 소식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32절과 33절에서 밤에 일어나 밭에 매복했다가 아침 해 뜰 때에 성읍을 엄습하라고 작전까지 세워 줍니다.
34절에서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무리로 나누어 세겜에 맞서 매복합니다. 35절에서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섭니다. 그 시대에 성문 입구는 재판이 열리고 성읍의 일이 결정되는 자리였습니다. 가알이 거기 서 있다는 것은 이미 세겜의 통치자처럼 행세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의 작전이 시작되어 군대가 움직입니다. 가알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스불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스불이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다고 둘러댑니다. 37절에서 가알이 다시 말하자 이번에는 스불이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그러고는 나가서 싸우라고 합니다. 가알이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나가 아비멜렉과 싸웁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추격하니 가알은 도망하고 부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습니다. 스불은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쫓아내어 세겜에 거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겜 사람들이 신뢰하던 사람은 한 번의 싸움으로 끝났습니다. 가알의 패배요 아비멜렉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42절에서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자 그는 자기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어 매복시켰다가 그들을 칩니다. 한 무리는 성문 입구를 막고 두 무리는 밭에 있는 자들을 죽입니다. 45절에서 아비멜렉은 그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렸습니다. 땅에 소금을 뿌리면 아무것도 자라지 못합니다. 다시는 이 성읍이 일어서지 못하게 하겠다는 저주의 표시입니다. 자기를 왕으로 세워 준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이 한 일입니다.
어제 본문 20절에서 요담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대로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먼저 아비멜렉을 배반했고, 아비멜렉이 불처럼 세겜을 태웠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사사기가 이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내려갑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기는 거부하였지만 왕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의 모습을 보고 성장한 아비멜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세겜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아비멜렉은 세겜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이되려하고, 인간 왕의 다스림을 원하는 결과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분별하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세웠다가 가알을 신뢰했고, 두 번 다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우리도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발목을 잡는 것을 경험합니다.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이 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할지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없는 삶의 결과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이스라엘에는 평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서로 이용하고 서로 공격하다가 함께 무너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빠진 열심의 끝은 배신과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사는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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