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0:1-18절 / 하나님의 근심(26.09.23)

2026.09.2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를 버리고 섬기지 아니하므로”(6절)

9장에서 아비멜렉은 망대 위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었고,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악행을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10장부터는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1-12장에는 입다라는 사사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입다가 등장하기 전 이스라엘이 어떤 형편에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1절에서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 잇사갈 사람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며 23년 동안 사사로 있다가 죽어 사밀에 장사되었습니다. 사사기에는 기드온이나 입다나 삼손처럼 이야기가 길게 기록된 사사가 있고(대사사), 짧은 몇 절 안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사사가 있습니다(소사사). 오늘 1-5절이 소사사인 돌라와 야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절과 3절에 특이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라고 기록합니다. 보통 사사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기드온과 아비멜렉을 거치며 사사의 자리가 왕처럼 누리는 자리가 되자, 그 자리를 탐내어 스스로 일어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자리가 사람이 올라가려는 자리로 변한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도 그렇습니다. 직분은 내 지위가 높아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교회를 섬기도록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자리입니다. 내가 일어나서 앉으려하고 섬김 대신 누리려하면 문제가 됩니다.

3절에서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 22년 동안 사사가 됩니다. 그런데 야일에게는 아들 30명이 있었고, 그들이 어린 나귀 30을 탔으며 성읍 30을 가졌습니다. 기드온에게 아들 70명이 있었던 것처럼, 아들이 많다는 것은 아내가 많았다는 뜻이고 왕처럼 살았다는 뜻입니다. 어린 나귀는 그 시대 지도자와 귀족들이 타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급 승용차를 탄 셈입니다. 아들마다 성읍을 하나씩 나눠 주었고, 그 성읍들을 ‘하봇야일’이라 불렀습니다. 야일의 마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일은 사사였지만 왕처럼 살았고 아들들은 왕자처럼 살았습니다. 기드온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이스라엘이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되심을 저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문제는 ‘또’ 악을 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면 고통을 당했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구원하셨습니다. 이쯤이면 멈출 만도 한데 다시 악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죄가 더 깊어졌습니다. 6절에 이스라엘이 섬긴 우상이 7가지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입니다. 신 하나가 아니라 ‘신들’이라고 합니다. 주변 모든 나라의 신들을 다 가져다 섬긴 것입니다. 혹시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버리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과 암몬 자손의 손에 이스라엘을 파십니다.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이 섬긴 것이 “블레셋과 암몬의 신들”이었습니다. 그 신들을 섬기는 나라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열심히 섬긴 우상이 이스라엘을 지켜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우상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고 붙들고 사는 것이 있으면 결국 그것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이 우선되어야 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대적들은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18년 동안 억압합니다. 10장의 배경인 길르앗은 요단 동쪽입니다. 암몬 자손은 요단을 건너 서쪽의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도 싸웁니다. 요단 동쪽과 서쪽이 모두 공격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했습니다.

●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11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0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섬기다가 힘들어지자 하나님을 찾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사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십니다.

11-12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물으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않았느냐고 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민족을 세어 보면 7이고, 6절에서 이스라엘이 섬긴 우상도 7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일곱 가지 우상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은 일곱 민족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버린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다시는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구원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만큼 아프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아무 느낌 없이 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아파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시되 오늘 우리를 건져 달라고 구합니다. 16절에서 그들은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여호와를 섬깁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고통당하는 백성을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들이 다시 배반하고 돌아설 것도 아십니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시는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근심 속에는 사랑과 아픔이 함께 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됩니다. 암몬 자손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은 미스바에 진을 칩니다. 18절에서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말합니다.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익숙한 질문입니다. 1:1절에서 이스라엘은 누가 먼저 올라가 싸워야 하는지를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의논합니다. 그리고 먼저 싸우는 사람이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될 것이라고 상까지 내겁니다. 우상을 버렸다고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님께 바로 선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점점 어둠으로 내려간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한 사람이 없어 모두가 잘못된 모습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주변이 모두 어둠 속을 걸으면 그것이 옳은 줄 압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섭시다. 하나님은 그런 한 사람을 통해 가정과 공동체를 회복하십니다.

또한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죄를 끊어야 합니다. 반복되는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면 끊을 것은 끊고 돌이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만 섬길 때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복된 인생으로 세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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