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1절)
사사기는 삼손 이야기로 사사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17장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중심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가의 집에서 신상이 만들어지고 신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미가는 떠돌아다니던 레위 청년을 데려다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싶은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한 사람이 아닌 한 지파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단 지파가 미가의 집을 찾아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어제 본문 17:6절에서도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왕이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왕이신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일들도 그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1절은 단 지파가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때까지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단 지파도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분배받지 못했다는 말은 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삿1:34절은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으니 믿음으로 나가 그 땅을 차지해야 했는데, 단 지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땅을 포기하고 살 만한 다른 땅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쉬운 길을 찾은 것입니다. 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단 자손은 용맹스러운 다섯 사람을 보내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단 지파가 머물던 소라와 에스다올은 이스라엘의 남서쪽에 있었고, 그들이 찾아간 땅은 북쪽 끝이었습니다. 그 길 중간에 에브라임 산지가 있습니다. 다섯 사람은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합니다.
3절에서 그들은 미가의 집에 있을 때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에브라임 사람의 말투와 다른 말투를 알아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레위 청년에게 묻습니다.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4절에서 레위 청년은 미가가 자기를 고용하여 자기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머물러야 할 곳을 떠나 떠돌다가 여기까지 온 사정은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합니다.
그러자 단 지파 정탐들이 부탁합니다. 5절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지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레위 청년은 신상을 만들어 둔 집의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신상이 있는 곳에 가서 기도를 부탁한 것과 같습니다. 6절에서 그 제사장은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 제대로 묻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을 차지하지 못해 떠도는 지파가 떠돌다 한 집의 제사장이 된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대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신앙 형편이었습니다.
다섯 사람은 라이스에 이릅니다. 거기 있는 백성은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처럼 평온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롭고 풍요롭고, 주변에서 함부로 침입하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다섯 사람이 돌아가자 형제들이 어떠하더냐고 묻습니다. 9절에서 그들은 일어나 올라가자, 그 땅이 매우 좋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을 단 지파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 하신 데에는 그 땅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분배해주신 땅을 믿음으로 차지해야 했습니다. 라이스는 그런 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자기 눈에 좋게 보이니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분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할 분이십니다.
● “어느 것이 낫겠느냐”(19절)
단 지파의 가족 중 600명이 무기를 지니고 라이스를 점령하기 위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합니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13절에서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의 집에 이릅니다. 정탐꾼들이 들렀던 바로 그 집입니다. 다섯 사람이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14절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리고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끝까지 이 우상들의 이름이 여러 번 되풀이됩니다(14,17,18,20).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서 눈여겨본 것이 이것입니다. 관심이 있었다는 겁니다. 전쟁을 앞두고 이것을 가져가면 싸움에서 이기고, 새 땅에 자리 잡아 풍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으리라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풍요와 안전은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이 아니라 신상과 아무렇게나 세운 제사장이 자기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섯 사람은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600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섭니다. 다섯 사람이 들어가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갑니다. 그러자 미가의 집 제사장이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19절에서 그들이 대답합니다.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고 하면서 묻습니다.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의 자리는 조건이 더 좋은 쪽으로 옮겨 다니는 자리가 아닙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바르게 예배하도록 이끄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20절에서 그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슬퍼하고 애통해야 할 일 앞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혼돈과 어둠속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단 지파는 받은 땅을 지키지 못하고 떠돌았고, 레위 청년은 자기 자리를 떠나 더 나은 조건을 따라 옮겨 다녔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을 쫓아다니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두신 자리를 수고롭더라도 지켜 가는 것이 복된 인생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무엇을 의지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단 지파의 관심은 하나님과 말씀이 아니라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무엇이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 여기며 붙들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그것들은 헛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고 시간이 갈수록 견고하게 세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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