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10절 / 그대의 길을 가라(26.10.07)

2026.10.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1절)

사사기는 21장까지 있는데, 19-21장까지가 마지막 사건입니다. 지금까지도 사사 시대가 이렇게 어둡고 혼란스러웠나 싶었지만, 19장부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적이고 슬픈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의 시작입니다. 겉으로는 한 가정의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이미 무너져버린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사사기는 이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합니다. 왕이 없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신데 내가 왕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사기에서 모든 문제의 출발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복의 출발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등장합니다. 17,18장 이야기도 에브라임 산지에서 일어났고, 그 중심에 떠도는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준다는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다가 더 나은 자리를 준다는 단 지파를 따라간 사람입니다. 그 레위 청년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었는데(17:7절), 오늘 레위 사람도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합니다. 사사기는 마지막 두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되며 중심에 레위인이 있습니다.

레위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이스라엘 곳곳에 흩어져 살게 하시고,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도록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런 레위 사람이 첩을 맞이했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 일을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맡은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이 좋은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말씀으로 백성을 세워야 할 사람이 자기 사명보다 자기 욕망과 세상 정신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2절에서 그 첩은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넉 달 동안 지냅니다. 행음이 간음을 뜻한다면 그 시대 율법으로는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화를 내다, 다투다”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이 다투고 첩이 화가 나서 친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은 넉 달 동안 첩을 데리러 가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서 베들레헴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길(48km)을 넉 달 동안 가지 않은 것입니다. 넉 달이 지나서야 그는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첩에게로 가서 다정하게 말하며 데려오려 합니다. 첩이 그를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고, 그 여자의 아버지는 그를 보고 기뻐합니다.

부부 사이에 다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흐름 안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 질문이 생깁니다. 다투고 친정으로 가버린 아내, 넉 달이 되도록 가만히 있는 남편, 이것이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개인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라는 말은 교회에서 봉사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개인의 삶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레위인처럼 가지 말아야 할 길, 욕망과 탐욕의 길을 걷다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기를 묵상하며 내 삶의 왕이 누구인지,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5절)

4-10절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집니다. 정리해보면, 장인이 레위 사람을 머물게 하자 그는 삼 일 동안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합니다. 5절에서 넷째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떠나려 하자 장인이 떡을 조금 먹고 기력을 돋운 후에 가라고 합니다. 6절에서 두 사람이 앉아 함께 먹고 마시자 장인이 청합니다.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7절에서 그 사람은 일어나 가려 했지만 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합니다.

8절에서 다섯째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떠나려 하자 장인은 또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고 하고, 두 사람은 함께 먹습니다. 9절에서 그가 첩과 하인과 함께 일어나 떠나려 하자 장인이 다시 붙잡습니다.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10절에서 그 사람은 다시 밤을 지내려 하지 않고 일어나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릅니다.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입니다. 그 시대에는 길이 안전하지 않아 해 질 무렵에 길을 떠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떠났어야 할 길을 해가 기울어 떠난 것이 다음 본문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못한 것이 결국 큰 비극의 출발점이 됩니다.

4-10절까지 같은 말이 계속 되풀이됩니다. ‘유숙하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4,6,7,9), “먹고 마셨다, 기력을 돋우라, 마음을 즐겁게 하라”는 말이 반복됩니다(5,6,8,9). 그 사이사이에 레위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했다”는 말도 나옵니다(5,7,8,9). 장인이 사위를 이렇게 붙잡은 데에는 넉 달 만에 찾아온 사위를 잘 대접해서 딸과 잘 지내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극진한 대접은 뒤에 이들이 머물게 될 기브아 사람들의 냉대와 대조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사사기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위 사람은 이렇게 머물며 먹고 마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데 시간을 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9절의 장인의 말대로 그에게는 가야 할 그의 길이 있었고, 돌아가야 할 그의 집이 있었습니다.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어둔 시대 레위인의 사명은 막중합니다. 그는 일어나 떠나야 했는데 머뭇거리며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세상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잊고 죄악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일어나 떠나야 하는데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내 삶의 왕이 누구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사기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사람과 한 가정의 문제였습니다. 이 아침에 내가 정말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또한 지금의 자리가 머물러야 할 자리인지, 일어나 떠나야 할 자리인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과 지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머뭇거리고 있다면 일어나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집과 말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머뭇거림을 떨치고 과감하게 일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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