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1-21절 / 거리에 앉아 있으나(26.10.08)

2026.10.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12절)

어제 본문에서 레위 사람은 친정에 간 첩을 데리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 떠나려 할 때마다 장인이 붙잡았고, 결국 다섯째 날 해가 기울 무렵에야 길을 떠났습니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못한 것이 큰 사건의 시작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1절에서 그들이 여부스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려 합니다. 여부스는 예루살렘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지만, 그때는 아직 정복하지 못해 이방 사람들이 살던 성읍이었습니다. 해가 지는데 더 가는 것은 위험하니, 종이 주인에게 여부스 사람의 성읍에 들어가 하룻밤 묵자고 청합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2절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이런 의미로 읽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니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구별된 삶을 통해 신앙을 지키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레위인이면서 첩을 두었고, 넉 달 동안 첩을 찾지 않았으며, 처가에서 닷새를 먹고 마셨습니다. 레위인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배에 나오고 직분을 맡고 신앙의 언어로 말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물으시는 것은 우리 중심에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있느냐입니다. 겉과 속이 같은 신앙이어야 합니다.

레위인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유숙하자고 합니다. 동족이 사는 곳이니 이방 사람보다 따뜻하게 맞아 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브아는 여부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이르자 해가 집니다. 그들은 기브아에 들어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습니다. 넓은 거리는 성읍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입니다. 머물 곳이 필요한 나그네라는 것을 사람들이 보도록 거기 앉은 것입니다. 누군가 다가와 영접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5절 끝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오늘 우리 문화로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느 넓은 광장에 낯선 나그네가 앉아 있다고 그를 집으로 데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나그네가 머물 곳이 따로 없었습니다. 누군가 맞아들이지 않으면 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집으로 맞아 먹이고 재우는 것은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리에 앉은 나그네를 누구 한 사람 집으로 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브아의 형편을 보여 줍니다. 자기 편리와 이익만 생각하고 약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개인과 가정에서 시작된 무너짐이 이제 한 성읍 전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방 사람의 성읍을 피해 동족의 성읍으로 왔는데, 동족의 성읍이 이방 사람의 성읍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20절)

그런데 16절에서 저녁 때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 돌아옵니다. 본문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맞아들인 사람은 기브아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와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이 그곳 사람들이 베냐민 자손이라는 것을 계속 밝히는 것은, 이 성읍의 주인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노인은 거리의 나그네를 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습니다.

레위 사람이 대답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는데, 자기는 그곳 사람이며 18절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 사람이 돌아가려던 곳은 자기 집이었습니다(9절).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데 마음이 있었다면 처가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그는 상황이 어려워지자 ‘여호와의 집’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내 마음대로 살다가 필요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레위인이 이렇게 산다면 백성들의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지도자든 성도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내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19절에서 레위 사람은 나귀에게 먹일 짚과 여물도 있고 우리가 먹을 양식과 포도주도 있어 부족한 것이 없다고 덧붙입니다. 잠자리만 내어 주면 된다는 말입니다. 20절에서 노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쓸 것이 있다는 나그네에게 그것까지 내가 담당하겠다고 합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아에서 그렇게 한 사람은 이 노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고 한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기브아는 나그네를 맞아들이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리에서 밤을 보내기에는 심히 위험한 성읍이었습니다. 21절에서 노인은 그들을 자기 집에 데려가 나귀를 먹이고, 그들은 발을 씻고 먹고 마십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편안하게 끝날 것 같지만, 내일 본문에서 노인의 집에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겉모양의 경건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워야 합니다. 레위 사람은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여호와의 집으로 간다고 말했지만, 그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믿는 사람 같은데 삶에서 믿는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신앙입니다.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또한 사람을 대하는 모습으로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브아의 신앙이 무너졌다는 것은 나그네를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기브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렸지만 나그네 한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특별히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고 섬깁시다. 그것이 바른 신앙으로 세워져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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