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22-30절 / 신앙의 밑바닥(26.10.09)

2026.10.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23절)

어제 본문에서 레위 사람과 첩은 해가 진 뒤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맞아 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한 노인이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고, 그들은 발을 씻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납니다.

22절에서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쌉니다. ‘불량배‘라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벨리알의 자식들, 곧 쓸모없고 무가치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집을 에워쌀 정도였으니 적지 않은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문을 두들기며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겠다고 말합니다. 여기 ‘관계하리라’는 성관계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레위인 남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동성애를 하겠다는 겁니다.

나그네가 거리에 앉아 있을 때는 아무도 맞아 주지 않으며 냉정했지만, 그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를 환대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나그네에게 악을 행하려고 몰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이때 처음이었을까 싶을 만큼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성읍에서 성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집주인 노인이 나와서 그들을 막습니다. 23절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들의 행동을 ‘악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23절 뒤에는 ‘망령된 일'(네발라)이라고 합니다. 망령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4절 끝에서도 한 번 더 반복합니다. 노인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런데 24절에 이어지는 노인의 제안이 충격적입니다. 자기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끌어낼 테니 그들에게는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이 사람에게만은 이런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딸을 지켜야 할 사람은 아버지이고, 손님으로 맞은 사람을 지키는 것이 환대입니다. 그런데 노인은 남자 손님 하나를 지키기 위해 딸과 첩을 내어 주겠다고 합니다. 남자 중심의 시대였다 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어제 우리는 기브아에서 홀로 나그네를 맞아들인 노인을 좋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이 오자 그의 밑바닥이 드러났습니다. 평소에는 신앙의 밑바닥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보고 갈등이 생기고 위기를 만나면 그때 드러납니다. 문제없을 때 괜찮아 보이는 신앙이 문제를 만났을 때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런 순간에 우리를 지켜 줍니다.

불량배들의 요구도 충격적이지만, 그것을 막겠다는 노인의 말도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겉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말씀의 기준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사람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끝이 없습니다. 사사기는 그 끝을 숨기지 않고 보여 줍니다.

●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27절)

무리는 노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죄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말도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길을 갑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레위인이 충격적인 행동을 합니다. 25절, 레위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냅니다. 무리가 지목한 사람은 레위 사람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지키려고 첩을 강압적으로 붙잡아 끌어내어 문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 여자를 욕보이다가 새벽 동틀 때에 놓아주었습니다. 자기 첩을 지켜야 할 남편이 오히려 자기 대신 첩을 내어 준 것입니다.

동이 틀 때 여인은 자기 주인이 있는 그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집니다. 밤새 당한 일의 절망과 두려움을 안고 남편이 있는 집까지 겨우 왔지만 문을 두드릴 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기다리다 문을 열어 맞아 주기를 얼마나 바랐을까요. 그러나 날이 밝을 때까지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문 앞에서 여인이 겪었을 두려움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27절은 그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했다고 합니다. 첩을 밖으로 내보낸 사람이라면 밤새 그를 걱정하고 찾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첩이 없어도 자기 길을 가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봅니다.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 낼 힘조차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안타깝고 처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여인을 향해 레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여인을 일으켜 살피지도 않고 떠나자고만 합니다. 여인이 살아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구호조치도 하지 않습니다. 대답이 없자 그는 여인을 나귀에 싣고 자기 곳으로 돌아갑니다. 개역개정은 ‘그의 시체’를 실었다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이때 여인이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레위 사람은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여인을 돌보지 않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이르러 칼을 가지고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냅니다. 그 시대에는 전쟁에 군대를 불러 모을 때 짐승을 나누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레위 사람은 자기에게 이 일을 한 기브아 사람들을 이스라엘이 공격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여인을 문 밖으로 내보낸 사람은 자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기브아사람들만 정죄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 무너진 증거입니다. 둘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레위인이 이렇게 잔혹하고 비정합니다. 레위인이 이런 모습이라면 그 시대 이스라엘 전체가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30절에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고 합니다. 다음 장에서 이 일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와 싸우는 동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이방 대적과 싸울 때는 잘 모이지 않던 이스라엘이 동족을 치기 위해서는 함께 모입니다. 싸워야 할 상대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사기 내내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었고, 정작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지 않으면 서서히 내려갈 수 있습니다. 힘들어도 말씀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를 붙잡읍시다. 그것이 나와 가정과 공동체를 지킵니다.

또한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이 진짜 신앙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인도 레위 사람도 위급한 순간에 그 밑바닥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평소에 쌓아 둔 말씀이 위기의 순간에 나를 붙듭니다.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 안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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