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
사사기 묵상을 마치고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묵상합니다. 야고보서는 1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1장에서 한 이야기를 2-5장까지 더 구체적으로 풀어 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편지입니다. 1절을 보면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 그리고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어떤 형편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편지의 배경을 살펴보고, 야고보가 시련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나옵니다. 이 편지를 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가족들은 예수님을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부활 이후 믿음을 갖게 되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야고보는 자기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형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시고, 나는 그분께 속하여 순종하는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 믿음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입니다. 낯선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핍박을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그 시련 속에서 흔들려 원망하고 불평하며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들을 열두 지파라고 부릅니다. 사사기에서 열두 지파가 서로 싸우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구약에서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가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새 공동체로서, 구약 백성이 실패한 길을 이제 우리가 바르게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편지의 첫마디는 성도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 2절에서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우리라면 어쩌겠냐고, 참고 견디라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뛰어넘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시련 가운데 기뻐할 수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가 성도들의 형편을 몰라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 뒤에 하나님이 이루실 일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시련만 바라보며 원망하고 절망하지 말고, 그 뒤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사람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3절은 그 이유를 말합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4절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2-4절까지 ‘온전’이라는 말이 3번 나옵니다. 온전히 기뻐하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족함이 채워지고 견고한 신앙으로 세워집니다.
인생의 문제는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문제가 옵니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문제가 빨리 끝나는 데만 마음을 쓰면 우리는 계속 흔들립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주저앉을 것 같던 시련도 인내하다 보니 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믿음이 자라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시련은 낙심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할 일입니다.
●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9절)
5절은 시련을 만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입니다.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고 행동하는 힘입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도 갑자기 큰 문제를 만나면 잘못된 선택을 하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한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내 감정과 기분, 눈앞의 이익을 따라 결정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안의 욕심과 잘못된 기준을 보게 하십니다. 6절은 그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3절의 ‘믿음의 시련’에 이어 6절에서도 ‘믿음’을 강조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결국 선을 이루시고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까, 책임지실까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8절은 그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부릅니다. 두 마음은 원어로 “영혼이 둘로 나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다른 것을 함께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사사기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삶에서는 우상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9절에서 야고보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낮은 형제는 가난하고 비천한 성도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풍요롭게 사는데 예수 믿는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묻는 성도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높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영적인 신분이 그만큼 높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비교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리고 이 신분은 영원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부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11절은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져 아름다움이 없어지듯,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말합니다. 영원할 것 같은 세상의 부도 해 한 번 뜨면 사라지는 꽃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가난한 성도는 세상의 부자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졌고, 부한 성도는 그 부가 잠깐이라는 것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시련을 만날 때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눈앞의 시련에만 마음을 빼앗기면 원망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고 부족함 없는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는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합시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형편에 있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 은혜로 얻은 이 신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보지 말고 성도의 정체성으로 나를 보며, 날마다 감사하고 담대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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