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1-12절 / 혀는 불(26.10.20)

2026.10.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2절)

계속해서 야고보는 1:26-27절에서 말한 참된 경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2장에서 야고보는 이웃을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했고, 어제 본문은 그 연장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3장은 참된 경건의 다른 한 가지인 ‘혀’에 대해 말합니다. 1:26절에서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경건하다 하는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1절에서 야고보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고,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많습니다. 어제 본문과 연결해서 보면, 옳은 말은 많이 하는데 그 말대로 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믿음을 말하는데 행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고 말합니다. 잠10:19절도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의 말과 오래 신앙생활 한 사람의 말은 무게가 다릅니다. 새신자의 실수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교회에서 자리를 맡은 사람의 한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돌아보고, 그 자리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자신이 한 말로 그 신뢰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해야 할 말을 하고, 안 해야 할 때 감정을 드러내면 그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2절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말을 다스리는 것이 온전한 신앙의 표지라고 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합니다.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분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말은 누군가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본성 때문에 말은 상처와 문제를 일으킬 때가 훨씬 많습니다. 감정이 가는 대로 말을 쏟아 내면 나는 편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습니다. 많은 봉사로 쌓은 것을 말 한마디로 잃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말 한마디로 인한 것이 많습니다. 말 한마디가 이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하게 합니다.

혀의 중요성에 대해 야고보는 두 가지 예를 듭니다. 먼저 말에 대해서 말(馬)을 예로 설명합니다. 힘세고 빠른 말도 입에 작은 재갈 하나를 물리면 온몸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광풍에 밀려가는 큰 배도 지극히 작은 키 하나로 사공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5절은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라고 말합니다. 혀는 몸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작은 재갈과 작은 키가 큰 말과 큰 배의 방향을 정하듯, 작은 혀가 한 사람의 인생과 공동체의 방향을 바꿉니다.

5절 끝은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말합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태우고 한 공동체를 태울 수 있습니다. 6절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흩어진 성도들은 핍박과 가난 속에 있었습니다. 서로 보듬고 격려해도 부족할 때에 말 한마디가 가시가 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의 표현이 이렇게 강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6절은 혀가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라고 말합니다. 삶의 수레바퀴는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봅니다. 함부로 놀린 혀가 내 인생 전체를 불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공동체에도 유익이 없습니다. 그리고 6절 끝은 그 불이 지옥 불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혀를 잘못 쓰는 일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입니다.

7-8절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다 길들입니다. 코끼리 같은 큰 짐승도, 맹수도 길들입니다. 그러나 8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짐승도 길들이는 사람이 자기 입 안의 작은 혀는 길들이지 못합니다. 조심하겠다는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12절)

9절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이런 상황입니다. 주일 오전에 함께 모여 은혜롭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모인 자리에서 같은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성도를 저주하고, 비방하며 정죄합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너무 익숙해서 충격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10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을 저주하는 입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이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다 그렇지 하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자연의 이치로 설명합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나올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12절 끝은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샘에서 나오는 물은 그 샘 안에 있는 물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눅6: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혀를 길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조심하겠다고 다짐해도, 어느 순간 내 속에 있는 것이 그대로 나옵니다. 세상의 가치관, 남과의 비교와 경쟁, 시기와 미움과 욕심이 속에 있으면 상황이 생길 때 그대로 말로 나옵니다. 그래서 혀를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속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쌓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울 때 우리 입에서 격려와 위로의 말이 나옵니다. 언어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채워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내가 선 자리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자리가 주어졌다면 그 자리만큼 내 말의 무게도 커집니다. 내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합시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입술로 성도를 깎아내리지 말고, 공동체를 세우고 사람을 격려하는 지혜로운 입술이 됩시다.

또한 내 속을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듯, 속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말씀으로 채워진 성도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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