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2절)
야고보는 1:26-27절에서 참된 경건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2-4장은 그것을 하나씩 설명합니다. 2장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했고, 3장에서는 혀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4장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땅의 지혜는 시기와 다툼을 낳는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은 그 다툼과 싸움이 어디서 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1절에서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고 묻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시련과 가난 속에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서로 붙들어 주어도 힘든 형편에 그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싸움의 심각성을 전쟁에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에서의 싸움과 다툼은 심각한 일입니다. 싸우는 교회에 다니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싸우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는 야고보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야고보는 싸움의 뿌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정욕’은 원어로 쾌락, 곧 내가 즐기고 누리고 싶은 욕구를 가리킵니다. 그 욕구가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싸울 일이 아닌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대개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싸움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욕 때문입니다.
2절은 그 욕심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 줍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의 다툼도 겉으로는 의견 차이처럼 보여도, 그 밑에는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한 마음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런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2절 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지 않고 내 힘으로 얻으려 하니 싸움이 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방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우려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구하느냐입니다. 내 욕망을 채우려는 기도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십니다. 어제 말씀처럼 땅의 지혜를 따라 구하지 말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다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욕은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4절 이하에서 설명합니다. 야고보는 갑자기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언약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가까이하는 것은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하고,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한 번 더 말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에게 5절은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만히 있을 남편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벗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시기하실 만큼 우리를 사모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세상과 벗됨으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세상을 가까이하면 근심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8절)
6절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말합니다. 세상과 벗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내 힘과 내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내 힘으로 살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7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성도들을 다투게 하고 욕심을 내게 하고 세상과 벗하게 만드는 밑바닥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를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할 때 마귀가 우리를 피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길은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이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온 것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로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입니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 끝은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이 두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9-10절은 슬퍼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라고 하고,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약속합니다. 6절에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한 말씀이 10절에서 다시 나옵니다. 내 힘으로 얻으려 할수록 얻지 못하고,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11절에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1절의 싸움과 다툼은 대개 비방에서 시작됩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12절은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내 기준으로 형제를 헐뜯고 정죄하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비방과 판단이 일상이 되어 그 심각함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12절 끝은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묻습니다. 형제 향한 비방을 멈춰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싸우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싸우고 다투어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싸우고 싶을 때, 다투고 싶을 때, 그 자리에서 먼저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세상과 벗하고 형제를 비방하며 다투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낮아질 때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은혜를 누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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