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7 | 매일성경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2절)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합법성을 묻는 총독 닷드내의 편지가 다리오 왕에게 도착합니다. 왕은 명령을 내려 문서창고를 조사하게 하였는데 한 두루마리를 찾아냅니다. 발견 장소가 메대도 악메다 궁성입니다. 당시 왕들은 여러 왕궁에서 계절마다 돌아가며 머물렀는데 악메다 왕궁은 여름 별장입니다.
발견한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내용에는 1장에 기록된 것에 더 추가된 내용들이 있습니다. 고레스 원년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는데, 두루마리에는 성전의 규모와 건축 방식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3절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입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높이가 30규빗, 길이가 60규빗, 너비가 20규빗입니다. 한 규빗을 50cm로 한다면 높이는 15m, 길이는 30m, 너비는 10m입니다. 그런데 새로 지어질 성전은 높이가 30m이고 너비도 30m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의 규모는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고레스 왕이 보통 신전의 규모를 따라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축 방식은 4절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고 합니다. 새번역은 “벽은 돌 세 겹에 나무 한 겹씩 쌓아라”로 되어 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성전을 짓는 경비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4절 하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고 합니다. 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곳에 거주하는 사면 사람들이 물품과 예물을 공급하라고 되어 있는데, 두루마리 내용에는 건축 비용을 왕실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장에 기록된 것처럼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온 성전 기물을 돌려주어 제자리에 있도록 명령한 것까지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총독은 건축을 멈추게 할 생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한 편지를 보냈는데, 결과는 반대로 더 확실한 성전 건축의 근거와 멈추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함을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걱정스런 문제였는데 오히려 문제가 하나님의 일이 더 온전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8절)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다리오 왕은 총독 닷드내에게 답신을 보냅니다. 핵심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지 말고 도우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6절 하 “그 곳을 멀리하여”, 7절 “공사를 막지 말고 …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 공사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명령은 8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나라에 바치는 세금 중 일부를 성전을 건축하는데 끊임없이 제공해서 공사가 멈추지 않게 하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9절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라고 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필요한 제물을 날마다 공급하라고 명령합니다.
만약에 이런 왕의 명령을 임의로 변조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도 죽게 될 것이고 그 집도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왕이나 백성들이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아 성전을 파괴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한다라고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대한 페르시아 왕의 명령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 왜 이런 긍정적인 명령을 내렸는지 이유가 10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페르시아 왕인 자신과 왕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라의 안정과 번성을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다리오 왕은 다른 나라에도 이런 명령을 내렸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 신을 섬기는 신전을 짓게하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주었을 것입니다. 즉 다리오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닌 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론자입니다. 우상숭배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리오를 사용하십니다. 1장에서 고레스를 감동하신 것처럼 6장에서는 다리오를 감동하십니다.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이방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건축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우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환경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문제를 통해서 더 온전케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의 삶이 됩시다.
2025.11.06 | 매일성경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1절)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공사가 15년 동안 멈췄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BC 538년에 귀환해서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가진 후 BC 53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공사가 중단되었고 오늘 본문에서 공사가 다시 시작된 때가 BC 520년입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 목적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는데 서서히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집을 건축하고 삶의 안정을 위해 살아갑니다.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일으켜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학개1:1-9절을 보면 당시 상황이 잘 나와 있습니다. 2절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핑계하며 합리화합니다. 그러자 학개 선지자는 팩트폭격을 합니다.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성전은 무너져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꾸민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으로보면 좋은 집에 행복한 삶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무기력과 영적 피폐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을 6절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풍성해 보이지만 풍성하지 않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선지자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8절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멈추었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우리에게 가장 복된 삶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슥4:6절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은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책임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반드시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도전과 격려에 힘입어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다시 성전을 건축합니다. 백성들도 동참합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도왔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말씀으로 격려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시작되고, 쉽지 않은 과정이 계속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씀으로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저 앉아있던 지도자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성전에 무관심하거나 혹 관심은 있어도 머뭇거리던 백성들을 도전하게 하였습니다. 시작하게 했습니다. 또한 여전히 장애물이 있지만 극복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11절)
그런데 성전 공사가 시작되자 그 지역을 관리하는 총독 닷드내와 관리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공사를 멈추게 하려 합니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연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인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당시 바벨론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일도 반란을 모의하는 일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5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대적들로 인해 중단되었던 공사가 어렵게 시작되었는데 다시 중단된다면 아마 완공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므로 중단되지 않고, 대신 왕에게 편지를 보내 성전 건축이 합법적인 것인지 묻습니다.
7-17절까지가 총독이 왕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이 내용 중 총독의 질문에 대한 장로들의 대답이 나옵니다. 11-12절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자신들이 누군인지를 밝힙니다. “천지의 하나님 종”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지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총독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회복을 위해 일하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들이 포로 된 이유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을 사랑하며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어 고국으로 돌아온 과정을 설명합니다. 페르시아 초대왕인 고레스가 명령하였습니다.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빼앗겼던 성전 기물도 주어서 함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총독은 이런 내용을 편지에 담아서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해서 보내달라고 합니다.
혹 우리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인생의 장애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맡기신 목적과 사명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며, 다시 일어나 회복하고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2025.11.05 | 매일성경
●“유다 사람들이 …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12절)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자 대적들이 방해합니다. 이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자는 후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일, 즉 느헤미야가 성벽을 수축할 때 있었던 일을 여기에 기록하므로 성전을 지을 당시도 대적들의 방해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대적들이 왕에게 보편 편지 내용과 왕의 답신입니다. 대적들은 먼저 예루살렘을 12절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라고 하면서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패역”과 “반역”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12,15,19). 이들도 예루살렘과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평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땅에 대한 균형잡힌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편향되고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어버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거짓을 더해 고발합니다. 13절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부하고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적들에게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이용해서라도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왕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압니다. 바로 ‘손해’입니다. 그것을 자극합니다. 16절 하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라고 하면서 이 일을 그대로 놓아두면 결국 제국의 영토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악한 의도를 숨기고 왕을 위해 이런 상소문을 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14절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새번역은 “나라에서 녹을 타먹는 우리로서, 임금님께 불명예스러운 일이 미칠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 패역한 성읍이요 반역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일부는 사실이지만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외교정책입니다. 현대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의 상황 속에서 어떤 나라와 손을 잡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패역과 반역이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거짓과 왜곡을 서슴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편향된 시각의 위험성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과 어떤 공동체를 바라볼 때 현재만을, 그리고 문제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대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바른 시각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가 함부로 말하고 평가할 수 없는 삶의 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쪽으로만 보고, 문제만을 보고 쉽게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21절)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으로 이어집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답신을 보냅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니 편지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패역하고 반역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고국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페르시아 초대 왕인 고레스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귀환 목적에 따라 건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닥사스다의 결론은 대적들이 씌워준 프레임을 가지고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에 손해가 발생하고 영토를 잃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20절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라고 하며 주변 모든 나라가 조공과 관세를 바쳤던 이스라엘의 과거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이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때입니다.
결론적으로 왕은 건축을 멈추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런 편지가 전해지자 대적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달려가 공사를 그치게 합니다. 이것을 23절 “권력으로 억제하여”라고 합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멈추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스라서가 시작될 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하셔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서 모든 일을 주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대적들의 행동은 세상 임금의 권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24절은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고 합니다. 약 15년간 중단되었습니다. 참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중단되었다는 것은 결국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문제와 장애물을 만나도 절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동체를 바라봅시다. 지금까지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고 이해합시다.
2025.11.04 | 매일성경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2절)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7월에 모여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하고 절기를 지킵니다. 이어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드디어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1절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대적들이 듣습니다. 이 대적들은 현재 예루살렘과 주변에 사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정체에 대해 2절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라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했는데 앗수르의 포로 정책은 혼합정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곳곳에 흩어져 살게 합니다. 또한 앗수르 백성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해서 살게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통혼하게 되고 혼합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순수성을 위해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후손이 신약시대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들’입니다.
반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지만 혼합되지는 않고 순수함을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앗수르 땅에서 이주하여 혼합된 백성들이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 거주하면서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귀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기득권을 빼앗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2절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고 합니다. 함께 성전 건축에 동참하겠다는 겁니다.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방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은 그중 한 신 정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 “너희 하나님을”이라고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들이 함께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한 이유는 성전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혹 지어진다 해도 자신들의 수고를 주장하며 여전히 기득권을 주장하려는 목적입니다.
스룹바벨을 비롯한 족장들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3절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과거의 실패가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며, 그런 자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거절하면 분명 방해가 있을 것을 알았지만 타협하지 않습니다. 지금 성전 건축은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불신앙의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이익과 편리를 위해 타협을 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길이지만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또한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믿음의 삶입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4절)
함께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제안이 거절 당하자 이들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4절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합니다.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비난하고 조롱하며 주변에 악한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또한 5절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라고 합니다. 세상의 방법, 즉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불법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사람이었다는 이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같은 방식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더 많은 뇌물을 주어 해결하는 겁니다. 더 악한 소문과 강한 비난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돌아온 백성들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방해로 오랫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도 방해와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귀환한 백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페르시아 땅에서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황량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감동과 뜻에 순종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 합니다.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쉽지 않은데 방해하는 세력, 장애물을 만납니다. 이로 인해 약 15년이나 성전 건축이 중단됩니다. 마음 속에 원망과 불평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혼란과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여정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방해와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성전 건축의 방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한참 뒤에 일어날 성전이 아닌 성벽 재건을 방해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왕에게까지 상소를 올려 방해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과정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반대를 합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악한 세력들의 방해가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을 통해 이 시대 영적 싸움을 보습을 봅니다. 여전히 강력한 사탄의 세력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비난과 조롱으로 약하게 하고, 장애물을 놓아 믿음의 길을 실족하게 합니다. 한번 승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더 큰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공격을 이겨내는 것이 신앙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과정에 함께 하시고 승리케 하실 것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2025.11.03 | 매일성경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1절)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일곱째 달에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사와 고레스의 귀환 명령이 내려진 해에 돌아올 백성들은 귀환을 위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첫날에 고국을 향해 출발했고 약 1500km이상의 거리를 4개월 정도 걸려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스7:9절). 그리고 각자의 성읍에 흩어져 머물다가 2개월의 시간이 지난 7월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 것입니다. 아직 정착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7월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하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며 여러 절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나팔절이고, 10일은 속죄일이며, 15-21일은 오늘 본문에서 지키는 초막절입니다. 그래서 2절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먼저 제단을 만듭니다. 지금 성전은 무너지고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배를 위해서는 제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3절은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라고 하는데, 이전에 번제단이 있었던 터에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과정이 2절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라고 합니다. 4절도 “기록된 규례대로”, 10절은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드리지 못했던 예배를 회복하는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이전에 행하였던 규례를 따라 진행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절에는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라는 말이 있는데, 새번역은 “그들은,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이 두렵기는 하지만”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비어있던 예루살렘에 주변 나라 백성들이 들어와 거주하며 정착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이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제단을 세우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일을 할 때 이처럼 장애물도 있고 두려움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헌신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해결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 역시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나가야 합니다.
백성들이 회복한 예배는 초막절 절기와 매일 드리는 번제,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 등이었습니다. 6절 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고 합니다. 아직 성전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럼에도 중요한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10절)
이어 성전을 짓기 위해 기초를 놓습니다. 이때가 8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기술자들에게 돈을 주고 특히 성전을 지을 때는 고급목재인 백향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비용을 지불하고 두로와 시돈에서 백향목을 공급받습니다. 또한 레위 사람들을 세워 공사를 감독하게 합니다. 9절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성전을 기초를 놓으면서 다윗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11절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고백으로 보면 놀랍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이나 원망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과거 아름다운 성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그 성전을 우상으로 가득 채운 왕들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회복하십니다. 그렇다면 멸망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포로 기간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정된 시간이 되니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결과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니 다시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이 시간이 감격입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즐거이 찬양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감격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시작되는 성전의 기초가 이전 성전에 비하면 작고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쁨의 찬송과 통곡의 소리가 뒤섞여 있습니다.
본문을 정리해보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예배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마음의 성전을 잘 세우는 것입니다. 우상으로 채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장애물과 문제를 만납니다. 이때 주저 앉지 않고 극복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은 “다 함께 일제히”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1,2,9).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 즉 예배와 묵상에 일제히 동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