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7 | 매일성경
●“일 년 동안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으니”(1절)
23-26장까지 레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28-29장은 성전 건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27장이 들어 있는데 내용이 군대 조직에 관한 내용입니다.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성전 건축은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신앙만을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나라의 안정과 풍요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의 조직과 왕의 곳간에 대한 이야기가 27장에 나옵니다.
우리 신앙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매일매일 교회에서 기도만하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반대로 일에만 집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하는 신앙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가정과 일터라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균형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군대 조직은 1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관원들이 그들의 숫자대로 반이 나누이니 각 반열이 이만 사천 명씩이라 일 년 동안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으니”라고 합니다. 한 조직이 지휘관을 중심으로 24,000명씩 구성되어 있고 이런 조직이 12조직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직무를 감당합니다.
이런 군대 운영은 평상시에 이루어진 것이고 전시가 되면 모든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2-15절까지는 각 조직(반)의 지휘관이 누구인지를 기록합니다. 눈에 띄는 인물이 둘인데, 하나는 5-6절에 나오는 브나야입니다. 그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면서 6절 “이 브나야는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 위에 있으며”라고 합니다. 대제사장의 아들이면서 다윗의 30용사 중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7절에 나오는 ‘아사헬’입니다. 아사헬은 이미 죽은 인물입니다. 삼하2장을 보면 아사헬은 아브넬을 뒤쫓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때가 다윗왕 초기입니다. 그런 아사헬이 여기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12조직이 한 달씩 돌아가면서 나라를 지키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24장을 보면 레위인 찬양대도 24반차로 조직되어 돌아가면서 직무를 감당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공동체는 서로 임무를 나누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조직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32절)
16-22절은 각 지파의 지도자 이름이 나옵니다. 르우벤을 시작으로 단까지 이어지는데, 우리가 아는 12지파와 차이가 있습니다. 17절에는 아론 자손이 한 지파처럼 등장합니다. 아론도 레위 지파에 속하는데, 둘을 나누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계속 레위인과 제사장을 강조합니다. 또한 므낫세지파를 요단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서 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절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입니다. 대신에 아셀지파와 갓지파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당시 이 지파들이 미약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3-24절은 21장에 있었던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합니다. 다윗이 해서는 안되는 인구조사를 시행해서 하나님의 진노로 70,000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23절은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20세 이상 군대에 나갈 사람들의 숫자는 계수했지만, 20세 이하는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숫자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곳에서 다윗의 잘못을 기록하면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5-31절은 왕의 곳간을 맡은 자들입니다. 상당히 길게 다양하게 열거되는 것을 보면 당시가 번성의 시대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토대 위에 성전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내용은 다윗 곁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고 중요한 인사가 단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주변에 누가 세워지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윗 왕 곁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32절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지혜로운 모사입니다. 33절 아히도벨도 모사입니다. 또한 왕자들을 돌보고 교육시키는 수종자도 있고, 33절 하 후새는 왕의 벗으로 나옵니다. 군대 지휘관들도 있습니다. 다윗 혼자가 아닌 함께 이스라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지혜를 얻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내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수고가 모아져서 공동체가 아름답고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좋은 동역자가 되고, 또한 사람들을 세워 사명을 위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5.06.26 | 매일성경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6절)
레위인들이 담당했던 직무들에 관한 내용이 계속됩니다. 23장에서 레위인을 계수하였고, 23:4-5절은 “육천 명은 관원과 재판관이요 사천 명은 문지기요”라고 했는데 본문은 문지기와 곳간 책임자 그리고 관원과 재판관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문지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문지기는 여러 일들 중에서 좀 하찮은 일로 여겨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6절 “큰 용사라”, 7절 “능력이 있는 자이니”, 8절 “다 능력이 있어”, 9절 “능력이 있는 자라”고 합니다. 용사들과 능력있는 자들이 문지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23:5절은 문지기의 숫자가 4,000명이라고 하니 군대와 같이 상당히 많은 수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성전을 지키는 일이 그처럼 중요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모세를 통해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면서 울타리를 두르도록 지시하십니다. 이 울타리가 세상과 하나님이 계신 곳의 경계입니다. 구분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함부로 넘어오면 안 됩니다. 성전 시대 그 역할을 문지기들이 감당합니다. 문지기들이 이처럼 능력있는 용사들이라는 사실은 어떤 강력한 세상의 공격에도 성전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문지기들 가운데 오벧에돔에 대한 설명이 중심을 이룹니다(5-8절). 5절 하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고 합니다. 13장에 나온 것처럼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패합니다. 수레에 법궤를 싣고 운반하는데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손을 만져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다윗은 두려워합니다. 궤 운반하는 일을 중단했고 법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머뭅니다. 그리고 13:14절은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다는 것은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궤를 잘 보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다윗으로 하여금 다시 법궤를 옮기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이런 오벳에돔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많은 수의 자손들이 능력있어 문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오벳에돔이 이런 일을 기대하면서 법궤를 잘 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갑자기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 다른 사람이 두려워하는 일이지만 감당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므로 그것이 복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문지기 맡은 자들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마25:2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잘 감당해야 합니다.
13절은 문지기를 세우는 일도 “대소를 막론하고 다 제비 뽑혔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맡게 하신 일에 순종합니다.
●“이 슬로못과 그의 형제는 성물의 모든 곳간을 맡았으니”(26절)
20-28절은 곳간을 맡은 자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곳간은 두 곳이 있습니다. 20절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입니다. 이 가운데 성물 곳간이 어떤 곳이며, 어떤 물건을 모아두는지를 설명합니다. 26-28절을 보면 “구별하여 드린 성물”이라고 표현이 반복됩니다. 다윗을 비롯한 왕들이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면 전리품 중에 구별하여 하나님의 곳간에 드려 성전을 개보수하고 유지합니다. 이 일은 다윗뿐만 아니라 28절을 보면 사무엘과 사울왕 그리고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과 요압도 드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28절 하 “구별하여 드린 성물은 다 슬로못과 그의 형제의 지휘를 받았더라”고 합니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이요 군대장관이지만 구별하여 드린 성물을 곳간에 바치는 것은 레위인의 지휘를 받아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지막은 관원과 재판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들의 임무를 29절은 “성전 밖에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30절은 “여호와의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직임을 맡았으며”라고 하는데 이는 세금을 거두는 일을 맡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렇게 보면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는 물론 찬양대와 문지기 그리고 곳간 책임자와 모든 지역에 흩어져 관원과 재판관의 직무를 감당합니다. 왕과 군대장관들도 이들의 지휘를 받습니다. 이런 레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스라엘 곳곳에서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나라가 세워지게 하십니다. 그 중심에 레위인이 있고 레위인들이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열방 위에 뛰어난 나라가 됩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본문의 레위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능력있는 문지기가 되어 가정과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025.06.25 | 매일성경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1절)
23:5절에서는 레위인들을 계수하면서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4,000명의 찬양하는 사람들을 조직합니다. 이처럼 역대상을 보면 찬양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합니다. 15장에서 언약궤를 운반하고 안치하는 과정에서도 헤만과 아삽 등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성막 시대를 지나 성전 시대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조직 중 하나로 레위인 중심의 찬양대를 세웁니다. 그 내용을 25장 한 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조직은 다윗 임의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찬양대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상17:7절을 보면 “또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 떼를 따라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양을 치던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고 미약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거주할 땅을 주시며 다윗을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고백과 찬양을 기뻐 받으시고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 은혜에 감격해서 다윗과 같은 찬양과 감사가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찬양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역대기 저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회복되고 살아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나라의 회복과 부강을 기대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찬양과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때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모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2절)
다윗은 1절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불렀던 노래가 “신령한 노래”라고 반복됩니다(1,2,3). 그런데 “신령한 노래”의 원어는 “예언을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찬양대가 부른 노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노래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5절은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라”고 합니다. 찬양하는 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찬양이 말씀과 별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곡조에 담아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실제로 아삽(시50, 73-83)과 헤만(시88), 여두둔(시39,62,89)의 찬양 내용이 시편에 담겨 있습니다. 시73편 아삽의 시를 예로 들어본다면, 자신의 신앙 경험을 시에 담았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악인의 결과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런 찬양을 만들어 함께 부를 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 하나 반복되는 말이 “지휘 아래”입니다(2,3,6). 2절 “왕의 명령을 따라”, 6절 “왕의 지휘 아래”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찬양대가 왕의 직속 기관으로 왕의 명령과 지휘 아래 직무를 감당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가문 대표의 지휘 아래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합니다. 찬양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목소리가 좋고, 악기 연주를 잘 한다고 나만 튀면 안 됩니다. 때론 절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휘를 잘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원들이 있어도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하여도 지휘자의 지도 아래 하나가 될 때 아름다운 목소리를 냅니다.
또한 이들은 7절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8-31절까지 288명이 어떻게 조직되어 직무를 감당했는지 이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배우고, 연습을 반복하여 찬양합니다. 이런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함께 듣는 백성들에게 큰 은혜와 울림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8절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라고 합니다. 레위인들에게 직무를 맡기는데 이런 내용이 반복됩니다. 24:31절도 그랬습니다. “제비 뽑혔으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문이 중요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 간격이 컸지만 하나님 앞에서 일을 감당할 때나 찬양할 때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비뽑아 감당했습니다.
이 시대 적용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의 찬양은 어떻습니까? 모르는 찬양이라고 외면하지 않습니까? 배우고 익숙하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 유튜브 등이 잘되어 있어 검색만 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마음과 열심의 문제입니다. 또한 아는 찬양이라도 전심으로 찬양하는지요? 마음을 다해 큰 목소리로 찬양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어우러질 때 서로에게 감동이 있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됩시다.
2025.06.24 | 매일성경
●“아론 자손의 계열들이 이러하니라”(1절)
23장부터 레위 자손 가문과 담당 직무를 이야기하다가 24:1-19절까지는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직무를 감당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시 24:20-31절까지는 레위인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이유는 아론 제사장 가문도 레위 지파, 그핫자손에 속합니다. 또한 레위인들이 맡은 주된 일이 23:32절은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성전에서 수종드는 것이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론 자손이 어떻게 직무를 감당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각에서 제사장과 레위인 중 중요한 직책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연결하는 중보자 역할을 합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의 직무를 돕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역대기에 중요한 직책인 제사장에 관한 내용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레위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대기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오는데 제사장들은 많이 돌아옵니다. 제사장의 직책이 특권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로에서 2차 귀환을 할때 보니 레위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스라8:15절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왜 레위인들이 없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레위인의 직무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처럼 중심에 서거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직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돌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 레위인을 모집해서 돌아옵니다.
이런 레위인들이 정체성과 자부심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레위인이 없다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레위 가문의 명단을 열거합니다. 레위인들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어떤 부르심 속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감당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5절)
1절 “아론 자손의 계열들이 이러하니라”고 하면서 2절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라고 합니다. 본문은 왜 나답과 아비후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레10:1-2절과 민3:2-4절에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민3:4절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고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불로 분향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불로 분향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영광의 직분이 주어졌지만 그에 합당하게 감당하지 못하므로 죽게 된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으므로 다른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합니다. 그래서 3절 보면 다윗이 이들을 각각 나누어 직무를 감당하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다윗이 이런 일을 하는가에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이처럼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주도합니다. 다윗이 자기 열심으로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어제 본문 23:25-26절은 성막 시대가 가고 성전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성전 시대에는 그에 맞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가 필요합니다. 이런 일을 당연히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했어야 하는데,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모든 것은 무너지고 그것을 주관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무엘이 세워졌지만, 사무엘은 영적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런 후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직접 성전을 짓지 않았지만, 생각으로 수도 없이 성전을 짓고 또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곳곳에 배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많은 것을 묻고 물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직무를 나누고 감당하게 합니다.
제사장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엘르아살 가문 우두머리가 16명이고, 이다말은 8명입니다. 직무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숫자가 많은 가문이 주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숫자는 적지만 능력 있고 똑똑한 가문이 먼저하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같으면 시험을 치러 순위에 따라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5절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라고 합니다. 제비를 뽑습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말이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31절에 레위인들도 공정하게 제비를 뽑아 직무를 감당하게 합니다. 구약시대 제비뽑기는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차등이 없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일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기준으로 차등을 두지 않고 감당하게 합니다. 좀 부족한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책임지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렇게 해서 24개의 조직으로 편성해서 돌아가면서 성전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일을 돕습니다.
레위 자손도 마찬가지입니다. 31절 하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처럼 제비 뽑혔으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는 특권을 가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는 장자의 가문과 막내의 가문이 다름이 없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오늘 말씀을 교회에 적용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은 감당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큰 일, 작은 일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일입니다. 또한 직분이 있고 경험이 있다고 내 마음과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 아닌 조심스럽게 서로 의논하면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을 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을 할 수 있음이 은혜임을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025.06.23 | 매일성경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3절)
다윗은 21장에서 잘못된 인구조사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장소임을 발견하고 22장에서는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을 준비하고, 솔로몬과 방백들의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 지어지면 그곳에서 봉사할 레위인들입니다. 그래서 23-26장까지 레위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절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왕상1장을 보면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간단하게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절부터는 레위인을 계수하는 내용이 길게 이어집니다. 역대기 저자가 생각하기에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어떤 왕이 세워지느냐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광 돌리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반복되는 말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입니다(4,13,24,28,30,31,32). 예배하며 감사하고 찬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어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좋은 정치 지도자를 세우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영광돌리는 삶입니다.
3절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 모든 남자의 수가 삼만 팔천 명인데” 레위 사람을 계수합니다. 21장에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다가 무서운 징계를 받았는데, 레위인을 계수하는데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인구조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과 목적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21장의 인구조사는 다윗이 자신의 영광과 자랑을 위한 인구조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레위인을 계수하는 목적을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함입니다. 겉으로는 동일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동기와 목적을 아십니다.
본문 보면서 혼란스러운 것은 3절은 30세 이상으로 계수하는데, 24절과 27절은 20세 이상으로 계수를 합니다. 원래 기준은 30세 이상입니다. 민4:2-3절 “레위 자손 중에서 …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라고 합니다. 보통 군인으로 동원되는 나이가 20세 이상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30세 이상이 기준입니다.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은 영광이면서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함부로 미숙하게 감당하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숙함이 요구되기에 레위인은 30세 이상이 기준입니다. 그런데 20세 이상으로 기준을 낮춘 것은 다윗이 이전과 다른 규모의 성전에서 봉사할 영역들을 생각해 볼 때 레위인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으로 계수합니다.
●“아론은 그 자손들과 함께 구별되어 몸을 성결하게 하여”(13절)
6-23절까지는 계수된 레위인들이 가문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6절 “다윗이 레위의 아들들을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로 레위의 세 아들이 게르손, 그핫, 므라리라는 사실입니다. 성막 시대에는 이들이 성막 탠트와 기물들을 나누어서 이동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12-13절을 보면 그핫 자손 중 아므람의 아들이 아론과 모세라고 하는데, 아론에 대해서 특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 “아론은 그 자손들과 함께 구별되어 몸을 성결하게 하여 영원토록 심히 거룩한 자가 되어 여호와 앞에 분향하고 섬기며 영원토록 그 이름으로 축복하게 되었느니라” 이런 기록은 아론의 뒤를 잇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반복되는 말이 “구별”, “성결”, “심히 거룩”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을 세워가야 하는지 말씀해줍니다. 이 시대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 역시 “구별, 성결, 거룩”이라는 정체성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25-26절은 이제 레위인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임무를 감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광야를 이동하였습니다. 성막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레위인들의 주된 임무가 성막과 기물들을 이동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평강을 주십니다. 다윗 성인 예루살렘에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26절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에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필요가 없다 한지라” 이제 고정된 성전이 지어질 것이고, 이전 성막에 비해 규모도 큽니다. 그러니 이전과 다른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 내용을 교회에 적용해보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신앙의 환경은 늘 변합니다. 이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내게 익숙한 것만 붙잡지 않고, 새롭게 감당하고 변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묻고 감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8절부터는 레위인들이 감당해야 할 다양한 일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27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윗의 유언대로”입니다. 1절은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로 시작했는데 레위인에 관한 내용을 유언으로도 남깁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다윗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득했습니다. 실제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고, 성전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 이루어지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미 다윗은 마음과 생각으로 수없이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도록 사람을 세웁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열심이 귀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보다 사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사람, 하나님만 예배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구별됨과 성결함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