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14-22절/네가 열심을 내라(25.07.07)

2025.07.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15절)

​일곱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는 로마 시대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돈이 많은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비옥한 땅과 양 떼를 먹일 수 있는 넓은 초원을 가지고 있어 좋은 양모가 생산되었고 옷감과 양탄자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돈이 많으니 금융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유명한 의대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곳에 멘카루신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의학전문학교였고 거기서 귀를 치료하는 연고와 눈을 치료하는 안약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런 의료산업의 발달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했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14절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로 등장하십니다. “아멘”이시다는 의미는 진리의 주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충성”은 성경에서 두 마음을 가지지 않고 한마음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참된 증인”은 당시 순교자를 의미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라오디게아에 필요한 모습이 바로 “아멘과 충성 그리고 참된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를 15-16절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들의 신앙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습니다. 미지근합니다. 그러면 토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충격적인 말씀인데요,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풍부한 라오디게아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바로 물입니다. 이 물을 근처의 도시에서 긴 상수관을 설치해서 공급을 받았습니다. 물을 공급받는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골로새입니다. 여기서는 차고 정결한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히에라볼리입니다. 지금 파묵칼레라는 유명 관광지입니다. 여기는 뜨거운 석회 온천수가 나옵니다. 그런데 약 10km의 관을 타고 온 물은 식어서 미지근한 상태가 됩니다. 석회질이 포함된 미지근한 물은 토하고 싶은 물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라오디게아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를 의미는 신앙의 분명한 태도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의 신앙이 어떠했기에 주님께서 이런 책망을 하시는 것일까요?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라고 합니다. 이들은 부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신앙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계2:9절에서 서머나교회를 주님께서 칭찬하시면서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와 반대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는 상인들이 연합해서 황제숭배와 우상숭배하는 일에 돈을 대주었고 그 댓가로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그곳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의 부요함은 신앙의 타협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양보해서는 안되는 것을 양보해서 얻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상은 부요함이 아닌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입니다. 심각한 상태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20절)

​주님은 처방을 내리십니다.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세상의 부요를 추구하고 자랑하지 말고 영적 부요함을 위해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정결성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고난 속에서도 참된 증인으로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고난과 수고는 피하고 쉽고 편한 길을 걷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흰 옷은 성도의 거룩성을 의미합니다. 흰 옷 입은 거룩한 성도로서 무엇을 가까이 하고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를 알아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은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여기서 주님은 세 번이나 “사라”고 하십니다. 정체성이 분명한 신앙을 위해서는 수고가 따릅니다. 결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책망하십니다. 열심을 내기를 기다리십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들은 주님없이 교회를 이루고 주님없이 많은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어쩌면 이 시대 교회와 가장 비슷한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풍요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빈곤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주님을 본받아 주님의 길을 걷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과 수고를 피하지 말고 감당하면서 열심을 내어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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