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3:1-10절/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25.08.08)

2025.08.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2절)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1-2장에서는 예루살렘 땅에 새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절망의 땅이지만 그곳이 많은 사람들과 가축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불 성벽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곳에 세워지는 성전, 비록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3-4장은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정치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을 새롭게 세우십니다. 특히 중요한 사람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인데 본문의 내용입니다.

1절은 특이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 옆에 서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욥기1장에서 하나님의 어전회의에서 하나님이 온전하고 정직한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이 하나님께서 욥이 까닭없이 그러겠냐고 참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사탄은 참소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공격할까요? 3절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사탄이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책망하셔야 할 것인데,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하십니다. 이어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출19: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2절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비유하십니다. 불은 심판을 상징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복잡한 심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역시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자신들은 그렇다고 해도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한 대제사장이 거룩한 성전에서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서 여호수아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4절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사실은 더러운 곳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으라고 명령하셔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호수아의 죄악을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스스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죄를 제거해주시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이루실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 하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싹’은 오실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사11: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자 스가랴는 정결한 관도 머리에 씌워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며 정결한 관을 쓰게 됩니다. 바로 이 모습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며, 이 시대 성도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정결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떤 명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름다운 옷에 걸맞는 아름다운 삶, 정결한 관에 걸맞는 정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7절)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이 7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이라 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백성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도와 규례, 즉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도록 하시며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종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돌을 세우십니다. 그 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 언약을 확증할 때 돌을 세우는데, 핵심은 돌에 일곱 눈이 있다는 겁니다. 일곱은 완전 수이고, ‘눈’은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감찰하심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고 끊임없이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을 약속하시는 겁니다.

그 결과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이 말은 이스라엘이 풍요와 평안을 누린다는 표현입니다.

여전히 사탄은 참소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정죄하게 하고 초라하게 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 역시 정죄하고 판단하게 합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정체성과 신분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거룩한 신분에 합당하게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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