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4절)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개의 기적 중 마지막 일곱 번째이자 가장 위대한 표적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의 시작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를 넘어,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0:38절에서 분명한 표적들 앞에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고 하셨는데, 가장 위대한 일, 표적을 행하십니다.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에 걸렸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3km 동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그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는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3절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렇게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것을 보면 나사로가 위중한 상태였음을 알게 됩니다. 자매들은 당연히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급히 오셔서 오라버니를 고쳐줄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급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4절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나사로는 결국 죽습니다. 그렇다면 “죽을 병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사로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위대한 일이 될 것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죽음조차 사용하십니다. 우리 삶에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실패, 깊은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짓누르는 그 고난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드러나는 거룩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6절)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예수님의 다음 행동입니다. 5절은 예수님이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분명히 ‘사랑하셨다’고 기록하는데, 6절에 보면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십니다. 너무나 위급한 상황인데, 왜 일부러 지체하셨을까요?
우리는 17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가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계신 “요단강 저편”(10:40절)과 베다니는 걸어서 하루 정도의 거리입니다. 나사로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가지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출발한 후 나사로는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고, 소식을 들으신 후 이틀을 더 유하신 겁니다. 그리고 하루 걸어서 베다니로 향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지 4일 만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의 지체하심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지체하심은 결코 사랑이 없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다급한 요청이나 필요에 이끌려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단순히 아픈 병을 고쳐주는 것을 넘어, ‘죽음을 이기는 부활과 생명’이라는 훨씬 더 크고 영광스러운 선물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해 주님의 응답이 지체되는 것 같아 답답할 때,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기다림”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절)
이틀이 지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놀라며 만류합니다. 8절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다니를 향해 가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가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은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나사로와 같이 죽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시는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은 것을 11절 “잠들었다”고 표현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육신의 잠을 자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성경은 종종 죽음을 잠에 비유합니다. 영원한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다시 일어나듯, 살아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이 끝 혹은 영원한 절망이 되지 못합니다. 죄로 인해 찾아온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16절은 상황을 오해한 도마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그런데 이 말이 기록된 의미가 있습니다. 도마의 말처럼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 이 사건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의 결의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죽음을 길을 가신 겁니다. 그렇다면 도마의 이 고백은 이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제자는 도마의 고백처럼 “예수님과 함께 죽는 삶”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어두운 무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내 시간표대로 응답되지 않아 절망하고 계십니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합시다. 내 삶에 닥친 고난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참된 소망 가운데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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