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찬송하리로다 … 이스라엘의 왕이시여”(13절)
11장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참된 생명이심을 보여주는 이적입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반면 12장 앞부분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헌신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예수님 주변에는 철저한 배척과 놀라운 헌신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월절 명절을 맞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환영합니다. 그리고 열광적으로 외칩니다. 13절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호산나’는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종려나무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이나 왕을 환영할 때 흔드는 국가주의적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무리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17-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엄청난 표적을 보았고,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이라면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표적으로 시작된 이런 열정은, 바꿔 말하면 표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종교 당국자들에 의해 십자가를 지십니다. 마27:40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조롱에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이들의 열정은 실망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표적이 일어나지 않은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이 표적이 아닌 말씀 중심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의 의미를 알아가야 합니다.
결국 무리들의 열정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왜곡된 열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짜 목적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이 되어 우리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세상의 영광만을 구하는 이런 모습은 결국 자신의 기대와 다를 때, 이 열정적인 환호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14절)
무리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 예수님은 뜻밖의 행동을 하십니다. 14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상식적으로 세상을 정복할 왕이라면 크고 멋진 군마를 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십니다. 이것은 슥9:9절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군중들은 칼과 창으로 세상을 정복할 왕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사 평화의 왕으로,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이 무언의 행동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인 요한은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6절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환호하는 무리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입성하는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런 분위기라면 결국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고 자신들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신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이 구약의 예언을 이룬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것입니다.
또한 이 뜨거운 열정의 현장 한편에는 아주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19절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종교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넘어 나사로까지 죽이려 모의했습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자 극심한 위기감과 절망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 요한은 이 악한 자들의 탄식을 통해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술로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고 고백하게 만드심으로써, 결국 십자가를 통해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미리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원하고 있습니까? 환호하는 무리들처럼 말을 타고 칼을 들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는 예수님인가요? 아니면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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