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십자가의 의미와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감동적인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감동과 반대되는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자신이 택한 열두 명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반할 것을 구약 성경 시41:9절을 인용하여 밝히십니다.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중동의 문화에서 누군가와 한 상에 둘러앉아 ‘떡을 떼어 함께 먹는다’는 것은 깊은 친밀함과 신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깊은 우정을 나눈 자가 ‘발꿈치를 든다’는 것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는 아픔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을 몰라서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충격적인 배신이 실제로 일어날 때 제자들이 혼란에 빠져 믿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온전히 믿고 증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0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선언하십니다. 다가올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제자들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너희는 여전히 내가 보낸 대리자요, 너희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그들의 신분과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굳건히 세워주시는 내용입니다.
유다의 배신 앞에 에수님은 21절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그동안 요한복음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암묵적으로만 기록했지만, 이제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폭탄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며 의심합니다. 12명밖에 안 되는 소수 중에서 3년이나 가장 가까이서 동고동락했는데 배신자가 있다니,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유다는 철저히 자신의 탐욕을 위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웅성거릴 때, 한 제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 품에 가장 가까이 기대어 앉아 있던 이 사람이 바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입니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복음서 전체에서 자기 이름을 한 번도 쓰지 않고, 늘 자신을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결코 교만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그 벅찬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무한한 감격과 은혜의 고백입니다. 사도 요한은 평생을 그 사랑에 감격해서 살았다고 합니다. 요한에게 베드로가 머릿짓으로 과연 누가 예수님을 팔 자인지 물어보라고 합니다. 요한은 주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한 채 “주여 누구니이까”라고 묻습니다.
● “곧 나가니 밤이러라”(30절)
26절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며 유다에게 떡을 주십니다. 떡을 적셔서 주셨다고 하는데 포도주에 적셔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떡’은 십자가에서 찢기실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실 주님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은 가룟 유다를 십자가의 자리로, 생명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어둠을 버리고 빛되신 주님께로 나오라는 겁니다. 세상의 탐욕을 좇지 말고 주님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은 가룟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가 그 사랑의 떡을 받는 순간, 사탄이 그의 속에 들어갑니다(27절). 그가 빛이신 주님의 마지막 사랑마저 거부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선택하자, 어둠의 세력이 그를 완전히 삼켜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7절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명하시자 유다는 조각을 받고 곧 밖으로 나갑니다. 사도 요한은 유다의 퇴장을 이렇게 짧게 묘사합니다. 30절 하 “곧 나가니 밤이러라” 여기서 ‘밤’은 단순히 해가 져서 어두워진 시간적 배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빛이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자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캄캄한 어둠인지를 보여주며, 사탄이 지배하는 십자가의 짙은 어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식탁에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제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그분의 사랑을 충만히 누리는 ‘사도 요한’과, 3년이나 예수님 곁에 머물렀으면서도 결국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해 영원한 어둠 속으로 뛰쳐나간 ‘가룟 유다’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며 몸은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을지 몰라도, 마음으로는 주님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육신적인 가까움이 아니라, 마음의 친밀함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안의 이기적인 욕망과 어둠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읍시다. 사도 요한처럼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의 품에 깊이 안겨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합시다.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며, 밤이 아닌 생명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고 이 생명의 복음ㅇ르 전하는 복된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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