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16절)
지금 제자들은 굉장한 혼란과 두려움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의지하며 따랐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목숨을 바쳐서라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없어지시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자들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에 나 홀로 버려진 느낌,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이 제자들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위대한 약속과 따뜻한 처방전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에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계명 즉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자녀가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내 생명도 바칠 수 있어요!”라고 입버릇처럼 말은 하지만, 정작 아버지의 말씀은 하나도 듣지 않고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과 정반대로만 살아간다면, 그것을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제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의 증거는 곧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입술로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힘과 결단만으로는 주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계시면서도 온통 제자들 걱정뿐이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이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16절에 이렇게 위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서 ‘보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그 의미는 ‘위로자, 보호자, 돕는 자’입니다. 세상 법정에서 곁에 서서 나를 대신해 변호해 주고 도와주는 대언자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여기서 “다른 보혜사”라는 말은 “원래 보혜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보혜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떠나시면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셔도,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돕고 위로하며 영원히 함께하실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 하십니다.
그래서 17절은 이 보혜사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보혜사로 성도들을 도우시는데 진리의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은 곧 ‘말씀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신비, 혹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과 다른 행동들은 결코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십자가의 길, 순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18절)
예수님은 18절에서 제자들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어루만지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아와 같다는 말은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 보호자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왕좌왕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부활을 통해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임재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성도들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20절의 말씀처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는 신비롭고 완전한 연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 삶을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날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의 위기나 고독 앞에서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사,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시며 영원토록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살아갈 때,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내 삶의 구체적인 ‘순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주님의 말씀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가장 진실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곁에서 나를 변호하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복된 제자의 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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