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28절)
어제 본문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붙잡히신 예수님은 먼저 실세인 안나스에게로 가셨고, 다음으로는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손을 떠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로마 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게 되십니다.
그런데 28절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해 새벽부터 로마 총독의 지휘 본부인 ‘관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갑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정해서는 안되기에 이방인이 머무는 로마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무서운 모순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의 의식과 정결 규례는 철저하게 지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월절의 완성이신 어린양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제거하려 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신앙의 참된 본질인 생명과 사랑, 공의는 철저히 내다 버린 채, 종교적인 형식과 의식에만 집착하는 타락한 종교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혹시 우리도 겉모양은 그럴듯하게 갖추고 있지만, 내 삶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이웃을 미워하고 십자가의 진리를 가볍게 여기는 ‘껍데기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이들의 문제가 종교적인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31절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죄인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종교범이 아닌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신21:23절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는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식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음모를 모든 사람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계획이 성취되는 사건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절)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33절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 이 죄목으로 유대인들이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35절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라고 하면서 “네 나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하십니다. 3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예수님은 이 땅의 나라가 예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 세상 나라의 특징을 이야기하시는데 ‘싸워’입니다. 세상 나라는 로마 제국처럼 힘과 무력으로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미움과 경쟁의 나라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세상 나라 방식으로 이들과 싸우신다면 이들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속한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다른 의와 평강의 나라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나라입니다. 나의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 두 나라의 싸움이 치열합니다. 세상이 자기 이익을 위해 시기하며 싸우고 칼을 휘두를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사랑으로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머무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빌라도는 37절 “네가 왕이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당당히 선언하시며,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야기하시면서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대해 증언하러 오셨고, 진리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지금 빌라도는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 서 있습니다.
빌라도는 38절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진지한 질문이 아닙니다. 회의주의자들의 비웃는 듯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질문만 하고 예수님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도 돌아서버립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지만(38절), 자신의 정치적 안위와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 진리이신 예수님을 철저히 외면하고 결국 불의한 군중과 타협하는 길을 택하고 맙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 소경의 뼈아픈 비극입니다.
신앙의 형식에 치우쳐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일에 집중해서 예수님을 외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속이려 들지만,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경쟁과 이기심에 동화되지 말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힘과 능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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