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39-19:16절/죄를 찾지 못하였노라(26.04.01)

2026.04.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40절)

​평소에는 좋아 보이던 관계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위기가 닥치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진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자기 뜻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움켜쥔 것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이유는, 결국 그 마음 깊은 곳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강한 욕망과 이기적인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기적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섭게 소리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세상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타협하는 빌라도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롱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유대인들의 압박 속에 예수님을 심문해 본 빌라도는 38절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합니다. 그러면 풀어주면 되는데 종교 지도자들의 반반을 생각해서 하나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당시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죄수 한 명을 특별 사면하는 전례가 있었기에 39절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제안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비교 대상으로 ‘바라바’라는 흉악한 죄수를 내세웠습니다. 바라바를 ‘강도’라고 하는데 의미가 로마 제국에 대항해 무력 폭동을 일으켰던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위험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형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빌라도는 당연히 흉악범 바라바보다는 죄 없는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것이 상식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은 빌라도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그들은 무죄하신 예수님 대신, 흉악범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마 바라바보다 더 흉악한 죄인이 등장해도 그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제거해야 한다는 분노가 강했기에, 진리나 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군중의 반응에 당황한 빌라도는 이제 예수님을 데려다가 잔인하게 채찍질을 가합니다. 당시 로마의 채찍은 끝에 동물의 뼛조각이나 쇠붙이가 달려 있어,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무서운 형벌 도구였습니다.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푹 씌우고,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힌 뒤 3절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며 손으로 때리고 조롱했습니다.

빌라도는 이토록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이런 비참하고 초라한 자가 어떻게 너희를 위협할 왕이겠느냐”라며 군중을 만족시키고 풀어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과 아랫사람들의 본심이 드디어 폭발합니다. 그들은 더 큰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은 왜 대화나 타협도 없이 이렇게까지 맹렬히 소리를 질렀을까요? 바로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발했고,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더욱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빌라도의 아내가 꿈에 예수님 때문에 애를 태웠으니 그 옳은 사람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경고했기에 빌라도는 두려움을 느낍니다(마27:19절).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주저하는 빌라도의 가장 치명적인 정치적 약점을 찌릅니다. 12절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라며 로마 황제에게 총독을 반역자에게 동조한 자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15절 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겨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채워주는 세상의 권력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비극적인 장면입니다.

●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11절)

​예수님의 침묵에 답답함을 느낀 빌라도는 10절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생사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맞는 말 같지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11절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라고 하시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것을 아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본문 14절은 이날이 “유월절 준비일”임을 명확히 밝혀줍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바로 그날에, 예수님은 친히 ‘흠 없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드려진 것입니다. 주님은 수치와 조롱을 피하실 무한한 능력이 있으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의 길을 잠잠히 걸어가셨습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처럼 위대하게 성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 우리를 돌아봅니다. 생명이 없는 종교, 예수님이 빠진 신앙의 끝은 결국 자기 욕심을 이루려고 소리치게 됩니다. 또한 빌라도처럼 진실 앞에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이 왕이 되어 살아가려는 교만과 욕망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 인생의 유일한 왕으로 모시고, 때로는 억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사랑과 용서의 방식을 선택하는 삶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주신 주님의 그 크신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깊이 품고, 오늘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생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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