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18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을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들을 보면 잔인합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끔찍한 고통의 과정이 너무나 생생해서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본문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 담담하게 23절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라고만 기록할 뿐입니다. 저자인 요한은 우리가 단순히 감정적으로 십자가에 반응하기보다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 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중요한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입니다. 사실 이 십자가는 종교 지도자들이 강제로 지운 것이고 빌라도가 허락한 사형 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끌고 가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고 목적이었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그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줍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 역시 각자 짊어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복음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복음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총독 빌라도는 그 위에 명패를 써서 붙였습니다. 히브리어와 로마어, 그리고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었습니다. 지나가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고쳐 쓰라”고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진짜 왕으로 믿어서 그렇게 쓴 것은 아니었겠지만,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참으로 만왕의 왕이시며, 이 땅에 왕으로 오신 분이심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온 세상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경배해야 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23-24절에는 십자가 아래에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가지고, 통으로 짠 속옷은 찢지 않으려고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지는 참담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잔인한 행동조차 사실은 예수님이 오시기 한참 전, 다윗 왕이 기록한 구약 시편 22:18절의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사건이었음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틀림없이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겉옷과 속옷을 모두 빼앗기시고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수치였습니다.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토록 비참하게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 모든 죄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대신 다 짊어지시고 덮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 덕분에 우리는 죄의 수치를 씻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26절)
이제 주님의 시선은 십자가 곁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여인들과,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향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은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26절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요한에게도 당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은 왜 갑자기 요한을 향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을까요? 만약 단순히 홀로 남으실 어머니의 부양이 걱정되셨다면 “요한아, 우리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라고 하시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육신의 혈육 관계를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영적 가족’인 교회 공동체가 탄생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 안에서 이제 마리아의 아들이 요한이 되고, 요한의 어머니가 마리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피를 나눈 혈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 땅의 육신적인 혈연관계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결국 다 끊어지고 마는 유한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맺어진 영적인 가족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피로 맺어진 진정한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기꺼이 섬기며, 약한 자를 따뜻하게 세워주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인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모든 수치를 온몸으로 담당하셨으며, 우리에게 ‘영적 가족’이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 역시 각자에게 주어진 복음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짊어지고 생명의 길을 묵묵히 따라갑시다. 또한 주님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영원한 가족으로 묶어주신 우리 지체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사랑으로 섬겨주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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