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2:1-24/여호와 이레(26.04.09)

2026.04.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자녀가 없던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죄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땅과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25년의 기다림 끝에 100세가 되어서야 기적처럼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 본문 바로 앞 21장을 보면 그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났고, 아브라함은 주변 사람들과 평화 조약을 맺으며 부와 명예까지 누리는 그야말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안정되고 평안하다고 느낄 바로 그때, 하나님의 충격적인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집니다.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1절)

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는 짐승을 잡아 온전히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인데,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독자를 직접 불태워 바치라는 이 명령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로 주실 때는 언제이고, 이제 다시 바치라고 하니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명확히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은 사람을 유혹해 죄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이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큰 축복을 구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자에게 큰 직분이 주어지면 본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오롯이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는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도 아브라함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한마디 묻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이삭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모리아 산까지 걸어가는 3일의 길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산 아래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절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아브라함 혼자 내려와야 맞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굳건해졌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이삭을 주셨다면, 이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해서 드린다해도 하나님은 다시 주셔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분이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것을 히11:19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굳건하게 세워가십니다.

●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이상하게 느낀 이삭이 질문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8절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 고백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눕힙니다. 당시 이삭은 1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었고, 아브라함은 노인이었습니다. 이삭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아버지의 뜻에 이삭 역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아들을 내리치려하자, 다급해진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이나 아브라함을 부르며 그를 멈춰 세웁니다. 손대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12절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6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삭)과 하나님 자신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 건강,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선물보다 주님을 더 사랑함을 확인하셨고,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예비해 주시며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17-18절에 이전에 주셨던 약속을 다시 확증해 주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야 주어집니다. 특히 18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혼란한 시대, 사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복된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4절 “제삼일에”, 7절 “번제할 어린양”, 12절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18절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등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를 죽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향한 십자가의 고통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나 기대감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자체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며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이삭’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연단과 테스트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잠잠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일 때, 비로소 우리의 시야에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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