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3절)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레아와 라헬 두 자매와 결혼합니다. 라헬을 사랑했고 레아는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레아에게 하나님은 네 명의 자녀를 주었습니다. 네 번째 유다를 낳으면서 레아는 29:35절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녀만 놓고 보면 레아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자매가 남편 하나를 두고 자녀를 낳기 위해 경쟁하고, 각자의 여종을 남편에게 들이고, 식물 하나를 두고 협상을 벌입니다. 창세기 30장은 야곱의 가정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태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 이야기를 이토록 솔직하게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자녀가 없었던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네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며 시기합니다. 야곱에게 말합니다. 1절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곱이 화를 냅니다. 2절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의 말이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은 여기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대신, 자기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들입니다. 빌하를 통해 단을 낳자 6절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고 하고, 납달리를 낳자 8절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고 합니다. 자녀를 낳는 과정에서 기쁨보다 억울함과 경쟁의 언어가 먼저 나옵니다.
이런 라헬의 이 모습이 누구와 닮았습니까? 야곱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모습이 꼭 야곱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외삼촌 라반을 통해 야곱에게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셨다면, 이번에는 아내 라헬을 통해 야곱이 자기 자신을 다시 보도록 하십니다. 형의 장자권을 시기하고 욕심내어 자신의 방법으로 빼앗으려했던 야곱이었습니다. 자녀를 주고 안 주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던 야곱이, 정작 자신은 온 삶을 내 힘으로 쥐려 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17절)
유다를 낳으면 하나님을 찬양했던 레아도 라헬이 여종을 통해 자녀를 낳자,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줍니다. 실바를 통해 갓과 아셀이 태어납니다. 이름의 뜻이 각각 ‘행운’과 ‘행복’입니다. 그런데 정작 레아 자신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때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 어머니에게 가져옵니다. 합환채는 그 당시 사랑과 임신을 돕는다고 여겨지던 식물입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던 아들이 마음을 담아 가져온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이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레아가 분노합니다. 15절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그러자 라헬이 조건을 겁니다. 합환채를 자신에게 주면 오늘 밤 남편을 언니 침소에 보내겠다는 겁니다. 야곱이 라헬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산 것처럼, 라헬이 합환채로 남편의 하룻밤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 가정의 이 혼란을 통해 야곱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하나님은 계속해서 거울처럼 보여주고 계십니다.
저물 때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자 레아가 영접하고 동침합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소원을 들으셔서 다섯째 아들 잇사갈, 여섯째 아들 스불론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딸 디나도 태어납니다. 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 흔치 않은 일입니다. 디나는 나중에 34장에서 큰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녀가 없던 라헬이 처음부터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삭이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이 들으셔서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기도하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동원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이 시기와 경쟁으로 뒤엉켰습니다.
그리고 22절, 드디어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라헬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합니다. 이 요셉이 어떤 사람이 됩니까? 나중에 야곱의 가정 전체를 기근에서 살려내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살아남도록 길을 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시고 주신 아들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획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야곱의 가정이 너무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야곱의 아들 열한 명이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으면서 열둘이 됩니다. 이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민족이 형성됩니다. 시기와 경쟁과 거래와 혼란 속에서, 하나님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사람의 민낯이 이렇게 드러나도,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 가정도, 우리 공동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시기가 있고, 경쟁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에게 집중하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라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있습니다.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동원하고, 조급하게 서두르고, 남과 비교하며 경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기억하신 라헬에게 요셉을 주셨듯이,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자리가, 기도해야 할 자리입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