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24절)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야곱은 예물도 보냈습니다.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22절 “밤에 일어나”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에서가 갑자기 기습해 올까 두려워 밤중에 일어나 아내들과 자녀들을 깨우고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소유도 모두 건너가게 하고 나서,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라고 합니다.
홀로 남은 야곱. 이 장면이 야곱의 인생 전체를 상징합니다. 아내도, 자녀도, 재물도 다 보냈습니다. 그 무엇도 이 큰 문제 앞에서 자신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야곱에게 남은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야곱은 평생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갖게 됩니다.
24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이 홀로 남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씨름을 겁니다. 나중에 야곱은 이 사람이 하나님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30절에 야곱이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신학자 칼빈은 이 장면을 두고, 야곱과 씨름하신 분이 성자 예수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훗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그 시대에도 하나님이 야곱을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만날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인 것처럼, 야곱도 이 씨름을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씨름은 밤새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고,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고, 외삼촌 라반과 20년을 씨름하며 버텨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번에도 놓지 않았습니다. 25절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야곱의 그 집요함, 그 아집과 의지를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야곱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한 가지를 하셨습니다. 25절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더라” 허벅지 관절, 환도뼈는 인간 몸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골절되면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씨름은커녕 걷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31절은 말합니다.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을까요? 야곱은 자기 힘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집과 고집, 자기 지혜와 의지, 이것들이 야곱 인생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야곱아! 너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가 너에게 주려는 하나님의 약속, 그 땅의 약속과 자손의 약속은 절대 너의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다.” 이것을 하나님이 야곱의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에서의 문제는 네가 도망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해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28절)
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놓지 않습니다. 26절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채로 매달립니다. 야곱의 평생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이 한 문장이 드러냅니다. 축복이었습니다.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던 것도,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것도, 20년 동안 라반 아래서 버텨온 것도 다 축복을 향한 집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야곱이 원했던 축복과 지금 야곱이 붙잡고 구하는 축복은 다릅니다. 이전에는 자기 방법으로 축복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꺾인 상태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름을 물으십니다. 27절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갑자기 씨름하다 말고 이름을 물으시는 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름은 정체성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붙잡는 자, 속이는 자’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야곱의 대답 “야곱이니이다”는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이 동시에 자기 인생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경쟁하며 씨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28절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세상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 이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아, 너는 이제 하나님이 함께하는 존재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에서 앞에 두려워하지 마라. 이렇게 하나님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신 것입니다. 이름이 바뀐 것은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30절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하룻밤의 만남을 자기 인생 전체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으로 기억한 것입니다. 그리고 31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더라” 밤에 시작된 이 씨름이 새벽 해가 뜨면서 끝났습니다. 22절에서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작된 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름이 바뀐 뒤 찬란한 새벽으로 바뀐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속에 가득하던 불안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의 빛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절고 있었습니다. 더 건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몸의 중심이 꺾인 채로 새벽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해를 향해 걸어갑니다.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걸어가는 새로운 야곱, 이스라엘의 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칠흑 같은 밤을 만날 때, 내 힘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가장 두려웠던 에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씨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바꿔주시고, 아침 해를 보게 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 이것이 오늘 야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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