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23-36:8절 /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26.05.05)

2026.05.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26절)

야곱의 가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문제의 연속’입니다.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고, 아들들이 살인자가 됐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났고,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는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완전히 망조가 든 가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 혼란 뒤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22절 하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시각입니다.

23-26절까지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이 기록됩니다.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여섯 명. 라헬에게서 요셉과 베냐민 두 명. 라헬의 여종 빌하에게서 단과 납달리 두 명. 레아의 여종 실바에게서 갓과 아셀 두 명. 도합 열두 명입니다. 이 열두 명이 태어난 과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두 자매의 경쟁, 여종들을 동원한 자녀 낳기 대결, 합환채 하나를 두고 벌인 흥정. 어디 하나 정상적인 과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혼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열두 아들을 완성하셨습니다.

완전한 가정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가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빚어가십니다. 야곱의 변화를 위해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는 먼저 문제를 바라보고, 또한 누가 문제인지를 따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지금 일하고 계십니다.

27절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이릅니다. 28-29절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여기서 잠깐 나이를 계산해보면, 이삭이 60세에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만난 나이는 야곱 107세, 이삭은 167세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돌아와서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10여 년 됩니다. 그리고 이삭이 눈을 감을 때 옆에 누가 있었겠습니까?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으로 이어지고 이삭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야곱과 열두 손자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리고 점점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또 주목할 것은 29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는 기록입니다. 원수처럼 갈라섰던 두 형제가 아버지의 장례에서 함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도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장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형제를 모으십니다.

●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6절)

36장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왜 갑자기 에서의 족보가 이렇게 길게 등장할까요? 창세기는 약속의 사람과 약속 밖의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36장은 에서가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사람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장입니다. 이것을 몇 가지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첫째로 아내들의 출신입니다. 2절에 에서의 아내들 앞에 “가나안 여인 중”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붙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지만 동시에 죄악이 가득한 땅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이 땅 여인이 아닌 외삼촌의 딸들과 결혼했습니다. 에서는 그 경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또 에서의 아내 중 한 명은 이스마엘의 딸입니다. 이스마엘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습니다.

둘째로 자녀들이 태어난 땅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26절에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라고 기록됩니다. 반면 36:5에 에서의 아들들은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라고 기록됩니다.

셋째로 거주지입니다. 6절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그리고 8절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주하니라” 지도를 보면 세일산 에돔은 가나안 땅의 동쪽에 위치합니다. 창세기에서 ‘동쪽’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이 동쪽으로 갔고, 가인도 동쪽으로 갔고, 아브라함과 헤어졌던 롯도 동쪽 요단 평지를 선택했습니다. 에서도 동쪽으로 갔습니다.

본문에서 좀 혼란스러운 것은 야곱에 에서를 만났을 때 에서는 이미 에돔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에서가 야곱과 헤어져 에돔 세일 산에 거주했다고합니다. 이미 분리되어 살고 있었지만 오늘 본문은 공식적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는 야곱이 머물고 있고, 에서는 약속의 땅 밖으로 나갔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에서의 이야기를 완결 짓습니다. 이제부터는 야곱, 곧 이스라엘의 이야기만 남았다는 선언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후손입니까, 에서의 후손입니까?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신약의 성도들을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온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에서처럼 약속 밖에 있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약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 문제를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어도 하나님은 열두 아들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뒤엉켜 있어도,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붙잡는 것, 그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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