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4절)
요셉의 삶은 계속 아래로 내려갑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자리에서 노예로 팔렸고, 노예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끝으로 가는 것 같은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절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이 두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성경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중요합니다.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는 단순히 왕의 식탁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대 왕국에서는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마시는 술과 먹는 음식을 관리하는 사람은 왕이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이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왕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돕고, 중요한 일을 왕과 함께 의논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3절에서 요셉이 갇힌 그 감옥으로 들어왔습니다. 요셉이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요셉 곁으로 보내셨습니다. 요셉이 갇혀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가장 필요한 만남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4절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 들게 하니라” 보디발이 요셉에게 이 왕의 신하들을 섬기는 일을 맡겼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요셉은 여전히 신임을 잃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도, 보디발의 종으로 있을 때도,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한결같이 성실했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성실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성실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셉은 그 자리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고 모든 일이 잘되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감당할 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요셉의 삶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요셉이 보니 두 관원장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입니다. 나는 내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묻습니다. 7절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빛이 있나이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기와 함께 갇힌 사람들을 돌아보았고, 그들의 근심 이유를 묻습니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는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묻지 않았다면 두 관원장은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종종 이렇게 작은 관심 한 마디를 통해 시작됩니다.
두 관원장이 대답했습니다. 8절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그때 요셉이 말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이 한마디가 요셉의 신앙을 말해줍니다. 현재 요셉의 나이는 28세입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와 11년의 고난을 거치며 요셉의 신앙이 어디까지 왔는지가 이 말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이 해석도 해주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 셋이 있고, 포도가 열려 즙을 짜서 바로의 잔에 드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이 해석했습니다. 13절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3일 안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요셉이 해석을 좋게하는 것을 보고 떡 굽는 관원장도 자기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머리에 광주리 셋이 있고, 그 안의 음식을 새들이 와서 먹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19절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먹으리이다” 같은 사흘이었지만 결말이 정반대였습니다. 죽게 된다는 겁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바로의 생일이었습니다. 바로가 신하들을 불렀고, 요셉의 해석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달렸습니다. 22절 하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더라”
꿈을 해석해주며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했습니다.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술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2년 동안 잊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내가 도움을 준 사람이 나를 잊습니다. 내가 걸었던 희망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이 그때 요셉을 기억해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요셉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입니다. 자유는 얻지만 애굽의 통치자인 바로 왕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 바로 왕이 꿈을 꾸었고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 왕 앞으로 곧장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잊은 그 2년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가장 정확한 때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성실함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자리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성실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자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걸었던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