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1-17절 / 꿈을 생각하고(26.05.15)

2026.05.1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5절)

본문의 무대가 바뀝니다. 지금까지 애굽에서 요셉이 총리가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가나안 땅 야곱의 가정으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두 곳은 약 40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요셉이 살아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먼 곳에서 야곱의 가족을 위한 일, 즉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일을 이미 완성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도 기근이 심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위기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나섭니다. 1절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느냐” 야곱의 답답함이 담긴 말입니다. 여전히 가정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 형제들이 과거에는 동생 요셉을 제거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어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위기 앞에서는 누구 하나 나서지 않습니다. 그 사이 13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17살 소년에서 30세 장년이 되었고, 고난의 시간 동안 신앙이 깊어지고 사람이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봅니다. 야곱이 말합니다. 2절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아버지의 말에 아들들이 애굽으로 갑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 열 사람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막내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4절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야곱은 왜 베냐민을 붙잡았을까요? 지금 베냐민의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됩니다. 본문은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다”와 “재난” 이야기를 연결해서 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야곱의 마음속에 하나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셉의 죽음에 혹시 형들이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입니다. 형들을 만나러갔던 요셉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야곱의 마음에 남아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형들과 함께 보내면 베냐민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여전히 편애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요셉을 편애해서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이제는 라헬의 마지막 아들 베냐민에 대한 집착이 커졌습니다. 야곱이 이 가정에서 겪어온 상처와 편애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17절)

형 열 명이 애굽에 도착해서 총리 앞에 섰습니다. 6절 하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17살에 꾸었던 꿈, 형들의 볏단이 자기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절하고 있는 상대가 요셉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알았습니다. 9절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 꿈을 기억했습니다. 아직 아버지도 없고 막내 베냐민도 없으니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구덩이에 요셉을 던지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37:20절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사람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3년의 시간이 흘렀고,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 집에 있던 소년이 애굽의 총리 복장을 하고 있으니 상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엄하게 말했습니다. 7절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리고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형들이 당황하며 자신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13절에 이 말이 나옵니다.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하나는 없어졌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찔렸을까요?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은 12명의 형제들이 완전체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형제들이 형제를 제거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본문은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복수심 때문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숨기고 엄하게 대한 것은 이 가정의 더 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제거했던 그 상처와 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 채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요셉은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라 영적인 회복을 위해 형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하나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막내를 데려오면 정탐꾼이 아님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마치 이 장면은 요셉을 감옥과 같은 구덩이에 던진 상황과 연결이 됩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던 형들이 이제 자신들이 구덩이에 갇혔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 3일 동안 형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13년 전 구덩이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요셉의 목소리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 3일의 시간은 형들이 자신들이 한 일의 무게를 직접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회복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전혀 모르는 애굽에서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다른 하나는 육신의 양식보다 영적인 회복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형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왔지만, 요셉은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구하는 것 너머의 더 깊은 필요를 알고 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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