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16-34절 /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26.05.18)

2026.05.1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16절)

베냐민이 왔습니다. 요셉이 조건으로 내걸었던 그 막내가 우여곡절 끝에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보면서 형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베냐민은 살아 있었고, 아버지도 생존해 계셨습니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명령합니다. 16절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총리의 집으로 초대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기쁨 대신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18절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자신들이 모르는 곳으로 끌려간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노예로 삼고 빼앗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노예로 팔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왜곡이 어디서 왔을까요? 죄책감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형들은 과거에 요셉을 팔았고, 그 일이 마음속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애굽에 왔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삼일을 갇혀있으면서 그 잘못이 떠올랐고 후회하였습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그 죄와 연결되어 보이고,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청지기에게 달려가 이전에 자루에 돈이 들어 있던 일을 고백합니다. 사실은 요셉이 호의로 넣어준 것이었습니다. 오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의 짐을 지고 있으면 선의도 의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관계에서 신뢰가 깨지면 없는 문제도 생기고, 좋은 것도 나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정직함이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과 오해에서 우리를 지킵니다.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의 청지기가 말합니다. 23절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요셉의 청지기가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는 요셉을 곁에서 보면서 요셉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선포하던 요셉,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요셉. 그 요셉 곁에서 이 청지기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과거 요셉도 보디발의 집 청지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청지기였는데 지금 요셉 옆에 신실한 청지기가 함께 합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역할입니다. 불안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해주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전하는 청지기 역할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30절)

요셉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들이 예물을 드리고 26절 하 “땅에 엎드려 절하니” 베냐민을 포함한 열한 명이 절을 했습니다. 요셉이 17살에 꾸었던 꿈, 열한 볏단이 자기 볏단을 향해 절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요셉이 먼저 아버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이었습니다. 형들이 대답했습니다. 28절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인한 요셉의 시선이 베냐민을 향합니다. 29절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이라는 표현이 애틋합니다. 어머니 라헬의 자녀는 요셉과 베냐민, 두 명뿐입니다. 가장 사랑했고 가장 생사가 궁금했던 동생이었습니다. 요셉이 축복합니다. “소자여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에서 베냐민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쯤이었고 이미 결혼해 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 동생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워했는지가 이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30절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자신이 경험한 일을 생각하면서 그런 형들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노심초사했는데 자신의 눈 앞에 서 있습니다. 안심됩니다. 눈물이 쏟아집니다. 얼굴을 씻고 다시 나와 음식을 차리라고 명령합니다.

잔치가 차려졌는데 신기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32절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따로 차리고”입니다. 함께 모여 먹는 잔치인데 밥상이 세 개로 나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애굽 사람들에게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었습니다. 애굽은 다른 민족에 대한 강한 우월감이 있었고, 섞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야곱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땅은 이스라엘과 섞이기를 원합니다. 디나 사건 때 세겜 사람들의 요구가 그랬습니다. 서로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자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다릅니다.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인들과 섞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센 땅에 따로 살면서, 애굽 안에 있지만 애굽에 동화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시기 위해 애굽을 선택하신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정직함이 두려움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으로 고통받은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불필요한 두려움과 오해에서 지켜줍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요셉의 청지기가 두려워하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했듯, 우리도 불안한 사람들 곁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전하는 청지기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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