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1-15절 /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26.05.21)

2026.05.2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나는 요셉이라”(3절)

22년 전과 동일한 상황에서 유다는 동생을 외면하고 팔아넘기는 자가 아니라 동생 베냐민을 대신해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막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모습입니다. 형제들의 모습이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이제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시간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1절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요셉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부정하게 생각하는 애굽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형제들과의 이 만남을 오직 가족만의 자리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라는 신분보다, 한 가정의 아들로서 형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2절 “요셉이 큰 소리로 울었으니” 그동안 참고 있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기쁨과 슬픔이 섞인 눈물이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애굽 사람들에게 들리고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을 밝힙니다. 3절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요셉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권력도, 원망도 아닌 ‘아버지’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아버지, 그런 아들을 잃어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슬퍼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놀람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이 팔아버린 동생이 지금 애굽의 총리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형들 입장에서는 심판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4절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리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요셉은 과거의 죄를 덮지 않습니다. 사실을 정확히 짚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이어지는 말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내셨습니다.” 몇 차례 반복해서 강조합니다(5,7,8절). 요셉은 “당신들이”를 “하나님이”로, “팔았다”를 “보내셨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해석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다른 해석이 다른 삶을 만들어 냈습니다.

6-7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흉년이 계속될 것이고, 하나님이 이 가족과 후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해석이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닙니다. 고난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묻고 또 물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이스라엘 민족(후손)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8절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의 시선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있습니다.

●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

본문에서 반복되는 핵심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고백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사람의 행동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해석합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이 나를 팔았다”는 것에 머물렀다면, 오랜 시간 동안 그는 형들을 원망하고 복수의 기회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그는 용서할 수 있었고 사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제 자체보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난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누구 때문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싸우게 됩니다. 환경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선을 바꾸어 “하나님이 왜 이 일을 허락하셨을까”라고 묻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해석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고난의 뒤편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셉은 이 해석 속에서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9절 이후에는 형들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말합니다.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라”, “남은 흉년 동안 자신이 책임지겠다”, “가족들이 머물 곳까지 준비했다” 10절에서 말하는 고센 땅은 이스라엘이 번성할 터전이 됩니다. 요셉은 복수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살릴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 해석한 사람의 삶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마지막 장면은 눈물의 화해입니다. 14절 요셉이 베냐민을 안고 웁니다. 형들과 입맞추며 웁니다. 그제서야 형들이 요셉과 말을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해석이 결국 용서와 화해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첫째, 해석의 변화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무엇을 하시려는가”를 묻는 삶입니다.

둘째, 용서와 화해입니다. 요셉은 상처에 머물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살리는 사람으로 섰습니다. 우리도 상처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며, 용서하고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형들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요셉의 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든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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