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13절)
오늘 본문은 좀 특이합니다. 야곱 가족의 애굽 이주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갑자기 애굽 백성들이 양식을 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앞뒤 이야기를 연결해보면 오늘 본문이 없어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왜 이 이야기를 여기에 넣었을까 궁금합니다.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흉년 7년 중 이미 2년이 지났고 앞으로 5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5년 동안 애굽에서 일어난 일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돈을 가지고 와서 양식을 샀습니다. 그런데 기근은 계속됐습니다. 이제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먹어야 삽니다.
요셉이 말했습니다. 16절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없으면 가축으로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가져왔고, 요셉은 그 대가로 양식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기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축도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요셉에게 왔습니다. 18절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과 우리 토지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제안했습니다. 19절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이다” 요셉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20절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토지가 바로의 소유가 되었고, 백성들은 바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지혜롭고 선한 요셉이 백성들의 돈을 거두고, 가축을 거두고, 토지를 거두고, 결국 사람들을 종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심한 기근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무질서한 죽음을 막기 위한 통제 시스템을 요셉이 구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지금 자신이 왕이 아닙니다. 애굽이라는 나라 속에서 총리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야곱의 가정을 잘 보존하는 사명이 주어졌고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25절에서 백성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착취당했다는 분노가 아니라, 살았다는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요셉이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이 정한 제도를 보면 24절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가서 너희의 종자도 삼고” 그 당시 어떤 나라는 수확의 삼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기근 상황에서 오분의 일만 내도록 한 것은 오히려 관대한 제도였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위기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20절)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애굽 땅과 가나안 땅”(13,14,15).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가나안 땅도 이 기근의 상황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야곱의 가족이 가나안 땅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굽 백성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 황폐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의 가족은 고센 땅에 있습니다. 내일 본문인 27에는 이렇게 기록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세상이 기근으로 신음하는 그 시간에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22절, 26절은 갑작스런 제사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줍니다. 애굽의 제사장들은 바로에게 녹을 받기 때문에 토지를 팔지 않았고, 따라서 바로의 소유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의 권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조차 바로의 녹을 먹으며 바로에게 충성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제사장들과 같은 특권층들만 토지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상의 특권과 안전을 고센땅에서 누렸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가장 안전하고 풍요롭게 보호해주십니다.
한편 모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될 환경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센 땅에서 번성하겠지만, 이런 절대 권력 아래 살다 보면 언젠가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출애굽기를 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노예가 되어 고통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씨앗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상 나라의 특징입니다.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결국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주고 양식을 삽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가축을 내주고, 가축이 떨어지면 토지를 내주고, 결국 자기 자신을 종으로 내어줍니다. 세상이 주는 풍요 속에서 정작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돈의 종, 성공의 종, 남의 시선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내어주면서 자유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빼앗으시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입니다. 풍요로 우리를 종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영적 자유와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가족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드시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나라와 다른 나라, 착취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나누는 나라를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세상 나라의 본질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풍요를 약속하지만 그 안에는 종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종으로 만들고 있는지 깨어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착취하고 군림할 때, 우리는 섬기고 나누는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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