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10절)
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문제 많은 교회지만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거룩하여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부르는 첫 단어가 “형제들아”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볼로와 비교하며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향해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이며, 한 가족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감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권면하거나 문제를 지적할 때, 내 감정과 기분, 경험으로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커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권면할 때 비로소 문제가 풀립니다.
10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같은’이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됩니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교회 공동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됨은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면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살리는 말, 격려하는 말, 위로하는 말, 하나 되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수많은 말을 하며 삽니다. 그 말이 누군가를 공격하고 비방하는 말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성도로 부름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의 갈등은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될까요? 열심히 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방향이 다르면 열심히 할수록 상처가 깊어집니다. 다툼이 많아집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열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입니다.
10절 끝의 “온전히 합하라”는 원래 ‘찢어진 그물을 수선하다’, ‘부러진 뼈를 맞추다’는 의미입니다. 그물이 찢어져 있으면 아무리 던져도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던지기 전에 먼저 그물을 깁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 되지 않은 열심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울의 안타까움이 여기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열심이 있었지만 하나가 되지 못해 그 열심이 오히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13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 지금 에베소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세운 교회가 분쟁으로 갈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요. 분쟁의 핵심이 12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 교회는 특이하게 지도자를 중심으로 네 파로 갈라졌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베드로)파, 그리스도파. 지도자를 중심으로 줄을 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린도는 철학과 말 잘하는 사람을 우상처럼 숭배하던 도시였습니다. 그 세상의 정신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누가 더 똑똑하고 말을 잘하느냐를 따지며 사람, 지도자를 중심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교회로 들어옵니다. 경쟁하고 시기하고 높아지려 하고 인정받으려는 세상의 정신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기에 고린도 교회를 보며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합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사람을 중심으로 교회가 갈라지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파를 만들고 분쟁을 일으킬 때, 그것이 주님의 몸을 찢는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분하고 억울한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둘째,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구원했는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 교인들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를 특별하게 여겼습니다. 그 사람과 영적인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주는 사람은 도구일 뿐입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문제 같지만 중요합니다. 부목사님이 심방을 오는 것보다 담임목사님이 오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들로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고, 그것이 결국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7절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세상을 감동시킬 화려한 말과 지식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말과 탁월한 지식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언변이 십자가의 지혜를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단순하게 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내일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어떤 열심보다 하나 됨이 먼저입니다. 찢어진 그물로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을 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나는 누구 편”이라는 나 중심의 생각 때문에 나뉘었습니다. 나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 십자가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아름다운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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