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3절)
어제 바울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은 사람을 ‘신령한 자’, 곧 성숙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은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바울의 말에 고린도교인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성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알고 다양한 은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는 달랐습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들을 어린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이 처음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기초, 그것이 젖입니다. 젖은 어린아이에게 먹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거기서 성장해야 합니다. 밥, 곧 단단한 음식을 스스로 먹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고 곱씹어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단단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젖을 먹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심각한 것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삶에 어린아이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3절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오” 시기하고 분쟁하고 다투는 것, 그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나이는 어른인데 하는 행동은 아이 같은 모습, 이것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성숙함의 기준은 지식의 양도, 교회 출석 연수도, 직분도 아닙니다. 삶의 열매입니다. 그 사람이 공동체를 세우는가, 아니면 무너뜨리는가. 격려하고 위로하는가, 아니면 시기하고 분열을 일으키는가. 이것이 바울이 보는 성숙의 기준입니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 그것도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따라 줄을 서는 것이지요.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5절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이 그 때에 보내서 일하게 하신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섬기는 종입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가 했다, 내가 무엇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왜 열매가 없지, 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지 하는 괴로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면 달라집니다. 내게 맡겨진 일을 그 때에 감당하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면 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8절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교회 공동체에 문제가 생겨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물이 자랄 때 온실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비바람을 견디며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10절)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씀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이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집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들어와 생명을 얻는 곳,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까요?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10절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첫째로 기초가 중요합니다. 11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기초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복음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물질도 지식도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지금 내 기초가 무엇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것을 기초로 삼고 있는가.
둘째로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는가가 중요합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짓는 사람이 있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불을 통과합니다. 그 불에서 남는 것이 있고,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거대해 보여도 불을 통과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초라해 보여도 불을 통과하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15절, 불타버리면 해를 받지만 구원은 받습니다. 구원은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고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한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성숙한 어른 신앙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젖만 먹는 단계에서 단단한 음식을 스스로 먹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그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불을 통과할 때 남을 수 있는 것인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십자가의 정신으로 감당하는 일들이 결국 하나님 앞에 남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는 칭찬을 받는 삶을 오늘부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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