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1-11절 / 알지 못하느냐(26.06.09)

2026.06.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절)

어제 바울은 교회 안의 음행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런 사람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절을 위함이 아닌 회복을 위한 조치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문제인 교인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자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문제를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1절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구태여’라는 표현 속에 바울의 답답함이 담겨 있습니다. 굳이 왜 그곳으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 재판관들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1절 “불의한 자들”, 4절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 6절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그 당시 세상 법정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이들을 불의하다고 부른 것은 그 당시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정작 지적하는 것은 세상 법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신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알지 못하느냐”는 표현을 반복합니다(2,3,9). 이런 바울의 지적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책망입니다.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고 자랑하면서도 교회 안의 작은 다툼 하나 해결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며,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절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세상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세상을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반대로 세상의 판단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더 놀라운 말이 이어집니다. 3절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천사가 높아 보이지만, 성경은 천사를 ‘섬기는 영’이라고 말합니다(히1:14절).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천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성도들이 천사보다 훨씬 더 존귀한 존재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존재인 성도들이 교회 안의 작은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 바울은 이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5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라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울은 5-8절에서 ‘형제’라는 단어를 반복합니다. 5절 “그 형제 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 6절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8절 “그는 너희의 형제로다” 지금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함께 구원받은 형제입니다. 같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형제를 세상 법정에 세우고 이익을 얻으려는 것,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다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툼이 생기자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윽박질러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간 것 같습니다. 위협하고 있습니다.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태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7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내가 좀 양보하면 교회 안의 작은 갈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양보하지 않고 절대 손해 보려 하지 않다 보니 이것이 세상 법정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교회 안의 문제는 대부분 큰 문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은 갈등이 억울함으로 쌓이고, 그것이 점점 커져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그 뿌리에는 십자가가 없는 것, 내가 먼저 손해 보려 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9절)

바울은 여기서 강한 경고를 합니다. 9-10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구체적인 목록을 나열합니다.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이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한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통해 영광스런 구원을 경험한 성도로서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려는 겁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형제를 억울하게 만들고 불의를 행하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자의 모습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바울은 경고 다음에 소망의 말을 합니다. 11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과거에 고린도 성도들도 그런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아닌, 십자가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 내가 손해 보고, 내가 양보하고,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함께 걷는 것. 이것이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분쟁이 잦아듭니다. 내가 먼저 손해 보려는 마음이 있는 곳에 갈등이 해결됩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가진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갑니다. 그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판단할 성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게 될 존재.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십자가의 정신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형제를 대할 때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작은 갈등을 큰 상처로 만들지 않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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