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12-20절 /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26.06.10)

2026.06.1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13절)

4장까지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룬 바울은, 5장에서 음행한 자를 교회가 처리하지 않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6장 앞부분에서 소송 문제를 다루었고, 오늘 다시 음행 문제로 돌아옵니다. 왜 갑자기 소송 문제에서 음행 문제로 이어지는가? 6장의 소송 문제와 음행 문제는 뿌리가 비슷합니다. 힘있는 자들의 욕망의 문제입니다. 돈과 힘이 있다고 약한 자들을 법정에 세우고, 육신의 욕망도 제어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은 고린도 성도들이 자주 쓰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율법에서 자유를 얻었으니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합리화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주어진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 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어떤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유가 방종으로 가면 안 됩니다. 자유를 핑계 삼아 다시 죄의 종노릇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며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3절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이 말도 고린도 성도들이 자주 하던 말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육신으로 끝나는 것처럼, 몸으로 하는 일도 죽으면 다 끝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적인 것만 중요하고 몸으로 나타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단호히 반박합니다. 13절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오늘 본문에 ‘몸’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많이 등장합니다(13,15,16,18,19,20). 신앙은 영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몸으로 그 신앙이 어떻게 드러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우리 몸으로 사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사상의 영향 때문입니다.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영적인 것만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런 생각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스며들어 몸으로 짓는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4절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바울은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부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몸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으로 죄를 짓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20절)

● “너희 몸은 …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19절)

15절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창녀와 몸을 섞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무역으로 부유했고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행했고, 그 영향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몸으로 하는 게 무슨 죄냐, 죽으면 다 없어질 텐데”라는 생각이 이런 행동을 합리화했습니다.

바울은 심각하게 지적합니다. 15절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절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 성도들은 그것을 순간의 쾌락으로 끝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한 몸이 되는 것, 새로운 실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합한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강력접착제로 붙이는 것, 용접으로 금속을 연결하여 절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몸을 섞어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7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육체적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안에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입니다. 그것을 떠나 육신의 쾌락을 위해 행하는 음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8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여기서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라는 말 역시 고린도 교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로 보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단호히 아니라고 합니다. “음행은 자기 몸에 짓는 죄”라고 합니다. 음행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다른 죄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한 신학자의 표현처럼, 두 사람이 연합하는 순간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실체가 됩니다. 결코 “몸 밖의 일”로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앞서 3장에서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면(3:16절), 오늘은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전에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가, 사탄이 우리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며,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인지, 공동체와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인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나는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된 존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해지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거룩함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함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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