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10절)
1-6장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분열, 음행, 소송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7장부터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신앙생활 중에 궁금했던 것들을 바울에게 물었고, 바울이 그 질문에 하나씩 답합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이 가정과 부부 관계입니다.
1절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하던 말입니다. 부부 관계가 영적인 삶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답은 달랐습니다. 2절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한 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부부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핵심은 서로에게 신실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4절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말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여성은 남성의 도구처럼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편도 아내에게 속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부부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기 욕심만 채우지 않고 함께 아름답게 가정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얼마 동안은 분방할 수 있지만 다시 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못함으로 사탄이 공격하여 넘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잘 알았습니다. 자칫 사탄이 우리의 약점을 공격할 수 있기에, 서로 배려하며 함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신앙의 문제는 이처럼 작고 사소하게 보이는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가정과 부부 관계를 성경적으로 회복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7절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바울은 독신이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바울이 독신을 권한 이유는 결혼이 귀찮고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창조 원리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독신의 은사가 있습니다. 혼자 살아도 정욕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집중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입니다. 그런 은사가 있는 사람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에 대해 조언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내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고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적으로 조언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이니 가정을 이루도록 권면하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정에는 갈등과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마다 이 사람과 살아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에 답합니다. 10-11절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이번에는 자신의 권면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결혼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믿는 배우자와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사는 경우는 어떨까요? 12-13절에서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 어떤 믿는 성도들은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살면 자신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오히려 믿는 배우자의 영향으로 믿지 않는 배우자가 예수를 믿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믿는 부모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됩니다. 힘들지만 인내하며 가정을 이끌어온 결과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15절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믿지 않는 배우자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특히 함께 사는 것이 위협과 고통이 되는 상황이라면 갈라서는 것도 허용됩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화평을 이루며 인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인내를 통해 배우자를 구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17절)
17-24절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17절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20절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겁니다.
바울은 두 가지 예를 듭니다. 첫째는 할례입니다(18-19절), 할례자로 부름받았으면 그대로, 무할례자로 부름받았으면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할례였고, 일부는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19절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중요한 것은 육신의 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종과 자유인입니다. 21절에서 종으로 부름받았어도 염려하지 말고, 자유롭게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22절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이와 같이 자유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외적인 신분이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인이고, 자유인이라도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세상의 신분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23절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예수님이 십자가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 받은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놀라운 것은 주인과 노예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말씀의 원리를 따라 가정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말씀이 이 시대 흐름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원리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정을 잘 세워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부르심의 자리에서 감사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현재의 자리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값으로 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부르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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