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28절)
계속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질문에 답을 합니다. 앞부분이 부부 관계에 대한 답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그런데 그 권면의 바탕에는 세상을 보는 바울의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25절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바울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7장 내내 그는 자신의 권면과 주님의 명령을 신중하게 구분합니다. 앞서 이혼 문제는 “주의 명령”(10절)이라 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며 자신의 의견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귀한 자세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에 정답이 일일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성경이 말하는 큰 원리를 붙들되, 그 원리 위에서 자신이 판단한 것은 ‘내 의견’이라고 정직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40절 끝에서도 그는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한 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자기 의견조차 성령의 인도 안에서 신중하게 드린다는 고백입니다. 당시에는 “내가 하나님께 특별한 영을 받았으니 내 말이 곧 정답이다”라며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성경에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정답인 양 단정하는 가르침은 편할 수는 있어도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기준이 분명해야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권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읽으면 바울이 자꾸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라고 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창조 질서로 세우셨는데, 왜 바울은 독신을 권할까요? 그 이유가 26절에 있습니다.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바울은 머지않아 닥칠 고난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환난인지 본문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가 겪은 박해와 재난의 배경을 떠올리면 이해됩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나 큰 어려움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자녀의 결혼을 서두르라고 권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겠지요. 바울의 마음이 그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27절은 환난을 앞두고 굳이 환경을 바꾸지 말라고 합니다. 결혼했으면 그대로, 혼자면 그대로,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28절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의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이 죄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다만 환난의 때에 새로 가정을 이루면 챙겨야 할 사람이 늘고 고난이 더해질 수 있기에,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의 모든 권면 밑바닥에는 “나는 너희를 아낀다”(28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32절)는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32절)
29절부터 바울의 시야가 결혼을 넘어 인생 전체로 확장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여기서 ‘그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늘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는 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마음으로 깨어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29-31절에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없는 자 같이 하라”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같이, 기쁜 자는 기쁘지 않은 자같이, 사고파는 자는 가진 것 없는 자같이, 세상 물건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고 합니다. 가정도, 감정도, 소유도 그 자체가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31절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여기서 ‘외형’으로 번역된 단어는 ‘스케마’로, 무대 위의 한 장면이나 겉으로 드러난 형체를 뜻합니다. 연극의 한 장면이 막이 내리면 사라지듯, 우리가 보고 붙드는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 장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감정도 소유도 언젠가 지나가고,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눈길을 자기에게 붙들어 두려 합니다. 광고는 “이것이 없으면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이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영원한 것에, 주님 앞에 설 그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32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면 염려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결혼한 자와 결혼하지 않은 자를 비교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자는 “어찌하여 주를 기쁘시게 할까”하며 주의 일에 집중할 수 있지만, 결혼한 자는 “어찌하여 아내를(남편을) 기쁘게 할까”하며 마음이 나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내나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성도의 궁극적 목적임을 말하는 겁니다.
이 권면에는 바울 자신의 삶이 배어 있습니다. 그는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나고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위험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그런 삶에서는 자유로운 몸으로 오직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합당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35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결국 바울의 모든 권면이 향하는 곳은 하나,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는 삶’입니다.
36-38절에서 바울은 약혼한 이들에게 답합니다. 약혼했으니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결혼하기를 원하고 그것이 합당하다면 결혼하라,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37절은 마음을 굳게 정하고 결혼하지 않기로 했어도 잘하는 것이라 합니다. 둘 다 선한 길이되, 임박한 환난과 주님을 향한 헌신이라는 바울의 배경에서는 독신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독신을 권한 것은 임박한 환난과 복음 사역의 위험이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나온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모든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결혼은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다만 바울이 분명히 말했듯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독신으로 산다면, 그 핵심은 ‘나를 위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혼자 사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세상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감정도 소유도 모두 지나가는 한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속에서 영원한 것을 붙잡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결혼했든 독신이든,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환경과 물질을 나의 유익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만족을 누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이 그 삶에 풍성한 은혜를 더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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