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3절)
8장부터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룬 바울은, 11:2절부터 새로운 주제로 넘어갑니다. 예배에 관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현대의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느냐 마느냐, 남자가 무엇을 쓰느냐는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배경을 알면 바울이 진짜 다루는 문제가 무엇인지 보입니다.
본문을 풀어가는 열쇠는 13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곧 고린도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은 채, 그것도 조용히가 아니라 과격하게 기도하고 예언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는 우상숭배의 도시였고, 이방 신전에서 여자 사제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광적으로 예언하곤 했습니다. 그 모습이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예배 중에 누군가 갑자기 일어나 머리를 풀고 소리치며 기도한다면 예배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그 밑바닥에는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를 괴롭혀온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배 중에도 “나는 은혜받아서 하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내가 은혜받았다 해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걸림돌이 된다면 옳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전제 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모처럼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잘하는 부분은 분명히 칭찬합니다.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하는 균형은 우리도 배울 점입니다.
그러나 3절에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예배의 혼란을 질서와 권위의 문제로 정리해 갑니다. 여기서 ‘머리’라는 말 때문에 오해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단서가 3절 끝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등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동등하지만 질서 안에서 순종하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남성과 여성을 똑같이 존귀하게 지으셨지만, 가정과 예배의 질서 안에서는 권위의 자리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질서를 가정에 적용해 설명합니다. 아내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사랑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 같은 사랑입니다. 생명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복종이 어려워 보이지만,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이야말로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처럼 질서는 한쪽의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책임 위에 세워집니다.
이 질서 위에서 바울은 머리 문제를 다룹니다. 4-5절,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여자는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하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당시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이방 신전에서 남자 제사장들이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예배를 집례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교회 남자들이 그것을 따라 한다면 우상숭배와 교회 예배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둘째, 여자 사제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예언하던 모습이 교회 여성들에게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에서 오히려 영광을 가리는 일이었습니다.
5절의 표현은 충격적입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고 예언하는 것은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머리를 미는 것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강제로 가하던 수치의 표시였습니다. 바울은 그만큼 강한 표현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6절에서 바울이 권하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예배드릴 때 단정하게 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13절)
14절의 ‘본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본성’은 당시 사회가 남녀를 구별하던 보편적 관습을 가리킵니다. 그 시대 문화에서 남성은 머리에 무언가를 쓰지 않고 여성은 단정히 가리는 것이 통념이었는데, 고린도 교회 여성들이 이를 거부하며 “우리는 자유롭다”고 한 것이 혼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바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여성에게 불리하게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균형을 잡아줍니다. 11절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처음 창조 때는 아담에게서 하와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모든 남자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납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속해 있고, 서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핵심은 분명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주 안에서 똑같이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가정과 예배에는 질서와 권위가 있고,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6절 “그러나 누구든지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누가 따지고 논쟁하려 해도, 바울은 담대하게 교회의 질서를 분명히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본문대로 여성이 머리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머리를 가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두 가지 원리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복장이나 태도, 예배에서의 자세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한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둘째는 성도의 유익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새로 온 사람이 우리 모습을 보고 은혜받을 수도,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내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보편적인 관습을 존중하며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절제하고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그것이 복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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