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20-40절 / 품위 있고 질서 있게(26.06.23)

2026.06.2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20절)

바울은 계속해서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지만, 함께 모인 자리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 공동체의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일 때는 방언보다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렇다면 은사를 교회 안에서 어떻게 질서 있게 사용할지를 아주 자세하게 가르칩니다.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바울은 ‘악’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도리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성도에게 상처를 준다면, 잘못된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지혜에서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21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합니다(사28:11-12절).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먼저 자기 백성의 선지자를 보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듣지 않자, 마침내 앗수르에 포로로 보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언어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곧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은 회개하라는 부르심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임하는 메시지는 돌이킬 시간이 지나고 심판이 임박했다는 신호였습니다.

이 배경에서 22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심판의 표적과 같다면,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은 그럼에도 돌이키게 하는 부르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실제 상황을 통해 설명합니다. 23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처음 교회를 찾은 사람이 모두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자리에 정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대로 예언을 하면, 곧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 전해지면, 들어온 사람이 그 말씀을 통해 자기 마음의 숨은 것이 드러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전에는 자기가 잘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말씀을 들으니 자기 문제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새벽에 말씀을 듣다가 한 번씩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40절)

그래서 바울은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26절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은사를 주신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세우려 하면 문제가 되고, 교회를 세우려 하면 바른 사용입니다.

방언을 하려거든 두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반드시 통역하는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만 말하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막지 않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29절, 예언하는 자도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라고 합니다. 여기 ‘분별’은 원어로 ‘디아크리노’인데 의미가 “신중하게 따져보다, 무게를 달아 가늠하다”입니다. 즉 말씀을 따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계시가 임하면 먼저 말하던 자는 잠잠하고, 한 사람씩 차례로 하여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하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예언이라도 여럿이 한꺼번에 하면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30절에서 말하는 ‘계시’는 그 당시 상황을 전제합니다. 그때는 기록된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라, 하나님이 때로 직접적인 계시로 말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하나님이 완성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 완성 이전과 이후는 다르기에, 이 부분에서 혼란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34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이 말씀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배경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앞서 11장에서 여성이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이미 인정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잠잠하라’는 것은 여성이 교회에서 무조건 입을 다물라는 뜻은 아닙니다. 34절과 35절을 보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복종과 남편이라는 배경 안에서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서 예언을 하는데, 아내가 그 자리에서 남편의 예언을 가로막고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내가 회중 앞에서 남편을 그렇게 한다면, 그 당시 사회에서는 남편에게 수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정의 질서 안에서 권면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아내가 남편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논쟁하지 말고, 배울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묻고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곧 무조건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성도들은 방언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예언을 해야 할지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분명히 정리합니다. 39절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둘 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니 사용하되,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0절이 은사에 대한 결론이자 신앙생활 전체의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내 생각대로 가볍게 행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여, 이것이 성도와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될지를 헤아려 질서 있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중심은 이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가에 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익숙하게 하던 일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것이 교회의 유익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누가 우리 공동체를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고 본이 되는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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