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
바울은 어제 본문 결론으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은 분명히 있다고 담대히 선포하며, 그 부활이 어떻게 온 세상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부활을 소망하는 성도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첫 열매’는 원어로 ‘아파르케’입니다. 구약에서 추수의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던 예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추수 때 가장 먼저 거둔 한 단의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한 단은 두 가지를 뜻했습니다. 하나는 뒤이어 거둘 추수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그 추수가 뒤따른다는 보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을 대표하며 동시에 우리 부활을 반드시 보증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예수님이 역사상 처음으로 죽었다 살아난 분은 아닙니다. 엘리야 시대 과부의 아들이나 나사로처럼 죽었다 다시 일어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을 때와 같은 몸으로 일어나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그것은 소생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단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죽지 않는 새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참된 부활의 첫 분, 죽음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을까요? 21-22절은 죽음이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시작되었듯, 생명과 부활도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다고 합니다. 아담은 옛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을 죽음 아래로 데려갔고,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새 인류의 대표로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부활을 가져오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우리는 아직인가?” 그래서 바울은 부활에 순서가 있음을 말합니다. 23절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가장 먼저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그다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강림하실 때, 부활과 함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24-28절에서 바울이 길게 설명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이 세상을 지배하던 악한 세력이 완전히 패배하여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이 세상에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고, 공중 권세 잡은 세력이 여전히 활개를 치며 사람들을 어둠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옛 뱀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일찍이 창세기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하신 약속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창3:15절). 십자가 사건으로 사탄의 세력은 이미 치명타를 입었고, 승패는 이미 갈렸습니다. 다만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에, 패배가 결정된 세력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입니다. 그 마지막 승리가 완성되는 때가 주님이 강림하시는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또한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두실 때까지 왕 노릇 하십니다. 26절이 핵심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죄로 인해 죽음이 왔는데, 그 죄가 그리스도로 인해 정복됨으로 마침내 죽음까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믿음의 성도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27-28절은 좀 복잡해 보이지만 결론은 분명합니다. 만물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아들도 친히 만물을 복종케 하신 하나님께 복종하여,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입니다. 여기서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한다는 말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구속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신 뒤 그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질서를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세상이 죄로 어그러졌는데,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온전히 회복하셔서, 죽음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는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회복이 부활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부활이 없다면 이 회복도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결정적입니다.
●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4절)
29절에서 바울은 한 가지 예를 듭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고린도 교회에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아 해석이 어려운 구절입니다. 아마 먼저 믿었다가 죽은 사랑하는 이들과 부활하면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신앙고백하고 세례받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관습이 무엇이든 그 밑바탕에 부활의 소망이 깔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30절부터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예로 듭니다. 30절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부활이 없다면 예수를 위해 목숨을 걸 이유가 없습니다. 31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부활이 없는 사람들의 결론을 그대로 옮깁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이 말은 본래 이사야서에서 심판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향락에 빠진 사람들의 태도를 가리킨 표현입니다. 죽으면 끝이라면, 굳이 고생하며 헌신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다 한 번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돌아봅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목소리가 도처에 있습니다. 그래서 33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그런 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복되고 가치 있으며 장차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34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이런 시대일수록 말씀으로 정신을 차리고, 부활이 있다면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히 알아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부활의 확신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가 되셨으니, 우리도 반드시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이 확신을 품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 신앙으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가치는 죽은 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실을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합니다. 바울처럼 날마다 주님을 위해 죽으며, “네가 제일 중요하다”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을 소망하는 성도의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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