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2절)
7월을 시작하며 시편을 묵상합니다. 시편은 성경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150편으로 이루어진 가장 긴 책입니다. 그중 맨 처음에 놓인 1편은 시편을 여는 서문이자, 시편 전체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 첫마디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사람이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됩니다.
1절의 첫 단어 ‘복 있는’은 원어로 ‘아쉬레’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깊은 행복을 뜻합니다. 그러니 시편의 첫머리는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참된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입니다. 세상도 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복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복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 엉뚱한 곳에서 찾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편을 여는 이 첫 노래에서 참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중요한 점은, 1절과 2절을 보면 행복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 복은 우리의 삶을 통해 흘러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먼저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우리는 복을 받으려면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인은 먼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말합니다.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가 거듭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악의 길을 단순히 ‘악하다’고 하지 않고, 세 단계로 묘사합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동사도 ‘따르다(걷다)’, ‘서다’, ‘앉다’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죄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악인들의 꾀를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이익을 좇아 작은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두 번 하다 보면 그것이 걸어가는 인생길이 됩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자리에 아예 주저앉아, 그런 삶이 자기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걷다가, 서다가, 앉는 것입니다.
죄는 한 번 행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꾀가 길이 되고, 길이 자리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누가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으면 악 자체가 우리를 멸망의 자리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참된 복의 첫걸음은, 무언가를 하기 이전에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첫 단어인 ‘오직’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행복의 길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이 많고 가르치는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한 곳, 여호와의 말씀을 붙듭니다.
이 구절에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은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표현입니다. 말씀을 의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즐거워할까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이 즐거워지고, 즐거우니 자연스럽게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하다’는 원어로 ‘하가’인데, 본래 “중얼거리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입니다. 말씀을 입에 담고 하루 종일 곱씹으며 되뇌는 것입니다.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 입속에 말씀을 놓고 중얼중얼 곱씹는 것이 묵상입니다. 그러니 오늘 들은 말씀을 일터에서도, 길에서도 입으로 되뇌는 것, 그것이 묵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3절)
이렇게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이 주어질까요.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가 받고 싶어 하는 복은 보통 ‘형통’입니다. 그런데 그 형통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형통을 돈, 건강, 성공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진정한 복의 열매가 아니라,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이 참된 행복이라고 합니다.
왜 돈과 건강과 성공이 참된 복이 아닐까요. 4절이 답합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세상이 약속하는 그 복은 겉보기에 화려해도, 바람 한 번 불면 겨처럼 순식간에 흩어져 버립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습니다. 여기서 ‘심은’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옮겨 심으셨음을 뜻합니다. 그 복은 아무 문제가 없는 복이 아닙니다. 바람도 불고 폭풍도 치지만, 뿌리가 시냇물에 깊이 닿아 있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원하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맺게 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또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가득하여 늘 은혜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형통과는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형통입니다.
4절은 복있는 사람과 반대되는 악인에 대해 말하는데, 그렇다면 본문이 말하는 ‘악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흔히 나쁜 죄를 짓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악인, 죄인, 오만한 자로 단계를 그리며, 그 정점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을 둡니다.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제멋대로 사는 사람, 그가 악인 중의 악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중에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삶에서는 자기가 주인 되어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교회 안에 있다 해도, 그런 삶의 열매는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견고하지 못한, 가벼운 인생입니다.
5절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자기가 주인 되어 산 삶은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아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며,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절이 결론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서 의인은 곧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인정하신다’는 것은, 그와 동행하시고 늘 함께하시며 말씀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반면 악인의 길이 ‘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징계를 내려 멸하신다기보다, 하나님 없는 선택을 거듭하며 스스로 점점 소멸해 간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순간순간 두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착한 일과 나쁜 일 사이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받아 그분을 따라 걸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주인 되어 세상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이것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복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 받기를 원하지만, 그 복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를 통해 흘러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해야 할 그 한 가지가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입에 담아 곱씹는 삶,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견고하고, 철을 따라 열매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을 베푸십니다. 그 복된 삶을 풍성히 누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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