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4절)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며 의인과 악인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악인은 나쁜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심에도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 되어 사는 사람, 곧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2편은 바로 그 오만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꾸미며,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시편 1편과 2편은 나란히 놓여 시편 전체의 문을 여는 한 쌍입니다.
1절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첫 단어 ‘어찌하여’는 탄식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왜 저렇게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이 끊임없이 헛된 일을 꾸미고, 2절에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함께 모여 악한 꾀를 냅니다.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들은 정반대로 계속 악을 꾀하고 있습니다.
또한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고 할 때, 그 원어가 ‘하가’였습니다. 입으로 말씀을 되뇌고 곱씹는 것이 묵상입니다. 그런데 2:1절에서 이방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민다’고 할 때, 같은 단어인 ‘하가’가 쓰였습니다. 즉 이 악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종일 곱씹고 되뇌며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곱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헛된 일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묵상하며 삽니다. 문제는 무엇을 묵상하느냐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곱씹고, 어떤 이는 헛된 일과 문제를 곱씹습니다. 나는 무엇을 묵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묵상하는지가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3절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이들의 묵상 결론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신 통치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을 벗어던지고 싶은 결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이 이렇게 힘을 모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4절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왕들이 땅에서 아무리 힘을 모아 소리쳐도,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르실 거라 여기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 반역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비웃으십니다.
5절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하나님이 한번 진노하시면 감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선언하십니다. 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세상 왕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살려 할 때, 하나님은 도리어 그 한가운데 자신의 왕을 굳게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7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내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그 왕을 아들로 삼아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시고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 왕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십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만 최고이고 다른 나라는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 곧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왕 되어 살려는 사람들의 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제 1편에서 악인의 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결국 망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이야기를 2편이 이어가는 것입니다.
●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11절)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질 때 지어 불렀던 시입니다. ‘왕위 즉위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할 것은, 과연 이스라엘이 본문처럼 온 세상을 다스렸는가입니다. 그러지 못했습니다. 잠시 강성했을 뿐, 결국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왕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2편은 신약에서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본문입니다. 본문이 그리스도를 세 가지로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첫째, 2절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 단어가 원어로 ‘마시아흐’, 곧 ‘메시아’이고, 헬라어로 옮기면 ‘그리스도’입니다. 둘째, 6절 “내가 나의 왕을 시온에 세웠다”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 되심을 가리킵니다. 셋째, 7절 “너는 내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통치하심을 가리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한자리에 나오는 곳이 시편 2편입니다. 본문은 장차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삶을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왕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10-12절이 답입니다. 10절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헛된 일을 곱씹으며 반역을 꾀하지 말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인정하고 그 통치 아래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왕이 선포한 말씀을 숙고해야 합니다.
11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것은 결코 복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고, 그 앞에 떨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반역하려는 왕들을 하나님이 도리어 은혜 안으로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2절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여기서 ‘입 맞추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충성과 복종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입 맞추어 그를 왕으로 세웠고(삼상10장), 바알에게 입 맞춘다는 것은 곧 그 신에게 충성한다는 뜻이었습니다(왕상19장). 그러니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것은 그분 앞에 철저히 엎드려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2절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그러나 마지막 한마디는 위협이 아니라 초청으로 끝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어제 1편이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했는데, 2편은 “복이 있도다”로 끝나, 두 시편이 복이라는 말로 서로를 감싸 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무엇을 묵상하며 사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곱씹으며 삽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가, 아니면 헛된 일과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까”를 묵상하며 사는가. 그 묵상이 결국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하나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가 주인 되어 살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겸손히 인정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 왕께 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참된 복을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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