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1-5절 /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26.07.15)

2026.07.1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1절)

시편 15편도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평생 사모했던 자리는 어디였으며, 그곳에 머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습니다. 짧은 다섯 절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1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장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든 성막입니다. 성전 시대에는 성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산은 그 성막이 있는 거룩한 산을 가리킵니다.

이 질문에 다윗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가. 이것이 다윗이 평생 품었던 소망이었습니다. 이런 형식의 시는 성전에 오르는 순례자들이 “누가 이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하고 묻고 답하던 형식입니다. 시24:3-6절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룩한 질문입니다.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예배하러, 기도하러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옵니까. 다윗은 늘 그 자리를 사모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어떤 자리보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임재 안에 머무는 자리가 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자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놀라운 은혜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성전 삼아 함께하십니다. 그렇다면 기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며 그 임재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무나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에, 그 임재 안에 들어가는 데에는 합당한 삶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2-5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2절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여기 ‘정직하게 행하며’의 원어는 ‘타밈’입니다. 이 단어는 “흠이 없다,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성막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반드시 흠 없는 것이어야 했는데, 바로 그 무흠함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흠이 없어야 한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타밈’은 죄 없는 완전무결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노아와 아브라함과 욥을 이 단어로 부르는데, 그들도 다 허물이 있었습니다. 이 말의 본뜻은 온전함, 곧 안과 밖이 하나로 통합된 진실함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이 다르지 않고, 숨겨 둔 이면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할 수 없지만,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서 그런 삶을 살고자 힘쓰는 것, 그것이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어 공의를 실천하고 마음에 진실을 말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의 두 축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행하느냐’와 어떻게 ‘말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라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봉사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일 듯한데, 본문이 말하는 것은 전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일상입니다. 작은 일 하나를 어떻게 행하고,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절)

3절은 2절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허물하지 않는다’는 것은 함부로 헐뜯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혀로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됩니다. 주먹으로 때려도 안 넘어질 사람이 말 한마디에 꺾이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를 주의하고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약점을 들추고,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 부풀려 옮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약점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듣고 나면 거기에 살을 더 붙여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닐 경우,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것이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 사실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입을 다물 줄 아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3절에 ‘혀’를 말했다면, 4절은 눈을 다룹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를 멀리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와 교제하는가는 우리를 자라게도 하고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가까이할 때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 성숙해집니다.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지키려 애쓰는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면 손해가 되고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지켜 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5절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 그리고 돈을 받고 판단을 굽혀 무고한 자를 해하는 것, 하나님은 이런 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이 열거한 것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작은 일 하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고, 무엇보다 입술을 지켜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5절 마지막이 이 시의 결론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원합니다. 우리를 흔드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어디서 옵니까.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보면,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임재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계신 장막에 머물기를 그토록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 삼아 함께하시는 영광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함께 모여 예배하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그 자리를 기쁨으로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다른 하나는 일상의 삶과 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팎이 다르지 않게 정직히 행하고 혀를 지키며 작은 일 하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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