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16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저버렸다는 것이고, 그 결과 사회가 정의와 공의를 잃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런 유다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요?
13절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하나님이 드디어 일어나 서시는데, 격려하고 복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첫 번째 심판 대상은 14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시리니” 지도자들입니다. 백성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자기 배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포도원을 삼키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 자기 집에 쌓아 두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부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신앙생활하고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세워가길 기대하십니다. 리더들이 어떤 삶을 사느냐가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교회는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앞선 이들이 바르게 걸으면 뒤따르는 이들도 그 길을 옳은 길로 여기고 따라옵니다.
가난한 자의 것을 탈취한 그것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16절부터 시온의 딸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지도자들의 아내이자 부유층 여인들로 볼 수 있습니다. 백성이 가난에 허덕이는 동안,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과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는도다”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남을 호리는 눈짓을 하며, 꼬리 치듯 걷고, 발찌 소리를 내며 다녔다는 것입니다. 온갖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유혹하는 데 온 마음을 쏟은 모습입니다.
18-23절까지 이 여인들이 몸에 두른 장신구 목록이 길게 나열됩니다. 발찌, 머리의 망사, 반달 장식, 귀고리, 팔찌, 화관, 발목 사슬, 반지, 코고리, 손거울에 이르기까지, 꾸밀 수 있는 모든 곳을 꾸민 것입니다. 자기 몸을 치장하고 가꾸는 일에 온통 집중한 삶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단정히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오직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장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탐하는 것입니다. 관심 기울여야 할 것에는 두지 않고 헛된 것에 삶을 다 쏟는 것, 하나님은 이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십니다. 24절,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며 …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향기 나던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화려한 옷 대신 굵은 베옷을 입게 됩니다. 특히 “노끈이 띠를 대신한다”는 말에는 노끈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토록 화려하게 살던 이들이 나라가 무너지며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장정은 칼에 쓰러지고 용사는 전란에 망하며, 성문은 슬퍼하고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온 땅에 성전이 있으니 그곳만은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시온은 하나님이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오래 신앙생활하고 이룬 일이 많다 해도, 지금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않으면 그 과거가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4:1절은 그 수치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다 죽어, 일곱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매달려 결혼을 청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대겠으니 이름만 얹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화려했던 시온이 불순종으로 맞은 처참한 결과입니다.
●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2절)
하나님은 여기까지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말씀대로 살라 하셨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심판으로 끝내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에는 늘 회복의 메시지가 뒤따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반드시 회복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절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여기 ‘싹’이 중요합니다. 원어로 ‘체마흐’인데, 사11장의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예레미야와 스가랴서로 이어지는 메시아 예언의 핵심 단어입니다. 곧 이 싹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메시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름답고 영화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시온의 딸들은 스스로를 꾸며 아름다움을 얻으려다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아름다움과 영화는 여호와의 싹, 곧 메시아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영화로우신 메시아를 통해, 살아남은 이스라엘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무너지지만, 메시아께서 입혀 주시는 아름다움은 영원합니다.
3절, “시온에 남아 있는 자 …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은 백성을 거룩하다 불러 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자기 백성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4절이 그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모르셔서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닙니다. 다 아셨고, 심판이라는 힘든 과정을 통해 그 더러움을 씻어 내십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모두 하나님의 매는 아닙니다. 때로는 신앙을 연단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분명히 불순종 때문에 이 일을 겪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하게 회복된 백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절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 출애굽의 임재를 다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회복된 이스라엘과 반드시 함께하시고, 그 위에 영광의 덮개를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덮개는 결혼식의 차양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하나님이 언약 관계 속에서 자기 백성을 책임지고 이끄시겠다는 뜻입니다.
6절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의 피난처와 보호가 되어 주시십니다. 심판의 목적이 여기 있습니다.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그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시온의 딸들은 외모를 치장함으로 아름다움을 얻으려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외적인 부분만 화려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무너뜨리시고, 참된 아름다움은 여호와의 싹이신 메시아 안에,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흐름을 좇지 말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선 자로서 바르게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먼저 심판하실 만큼 앞선 자에게 더 기대하십니다. 오래 신앙생활하며 앞장서는 자리에 있다면, 뒤따르는 이들이 그 걸음을 따라옵니다. 그러니 그 발걸음이 뭇 성도가 따라올 만한 좋은 걸음이 되도록, 말씀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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