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1-25절 / 굳게 믿으라(26.07.24)

2026.07.24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1절)

어제 우리는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대가 바뀌어 아하스 왕 때의 일입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위기 앞에서 왕이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를 알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이 유다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임마누엘’이 오늘 본문에서 나옵니다.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아버지인데, 남유다 왕 가운데 상당히 악한 왕으로 꼽힙니다. 우상숭배를 일삼았고,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까지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일을 행한 왕입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급격히 강성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북쪽의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손을 잡고 앗수르에 맞서려 했는데, 남유다가 여기에 동참하지 않자 두 나라가 연합하여 남유다를 치러 올라온 것입니다. 그 소식에 2절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두 강대국이 연합해 쳐들어오니 왕도 백성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1절 끝에 이미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그들이 아무리 강해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남유다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도록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3절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왕궁이 아니라 물길이 있는 곳으로 가라 하십니다. 아하스가 거기 있었는데, 아마 전쟁을 준비하며 성의 수원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계획으로 위기를 넘겨 보려는 곳으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 혼자 가라 하지 않으시고 아들인 스알야숩을 데려가라 하십니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이고,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두 이름이 두 갈래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구원을 얻지만, 끝까지 불순종하면 나라가 무너지고 다만 남은 자만 돌아오게 되리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 통해 아하스에게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삼가며 조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두려워하는 두 나라를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라고 부르십니다. 이미 다 타 버려 연기만 나는 나뭇가지 토막이라는 것입니다. 아하스의 눈에는 온 세상을 뒤흔들 것 같던 세력이, 하나님의 눈에는 곧 꺼질 부지깽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두려움에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겁니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세상의 왕이 죽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하나님이 세상의 강대국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봅니다. 우리도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만 커 보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그 문제는 연기 나는 부지깽이일 뿐입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 두 나라는 유다를 쳐서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계획합니다(6절). 이는 다윗 왕조를 끊어 버리고 자기들 뜻대로 조종할 왕을 앉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다윗에게 그 왕위가 끊어지지 않으리라 언약하셨습니다. 그래서 7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사람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하나님의 언약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의미가 선명해집니다. ‘굳게 믿다’와 ‘굳게 서다’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 끝에 말하는 ‘아멘’이 그 어근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굳게 붙들지 않으면 굳게 서지 못한다”, “아멘 하지 않으면 아멘 되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오직 믿음이 하나님 백성의 존재 기초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굳건하지 않으면 견고하게 설 수 없습니다.

●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절)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합니다. 확실하게 이루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12절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신실한 말로 들리지만, 그의 속마음은 정반대입니다. 징조가 주어지면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해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를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경건한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믿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고집대로 하면서, 그것을 그럴듯한 신앙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유다를 무너뜨린 뿌리였습니다.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이 친히 징조를 주십니다.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 ‘처녀’는 원어로 ‘알마’인데, 혼기에 이른 젊은 여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아하스 당시에 일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선악을 분별할 나이가 되기 전에 아하스가 두려워하던 두 나라가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16절). 곧 이 아이의 자라남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그대로 기록됩니다. 곧 아하스 시대의 한 아이를 통해 주어진 이 징조가, 궁극적으로는 동정녀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핵심입니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하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두 나라를 막아 낼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그 확신을 한 아이의 이름에 담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 약속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18-25절은 그러나 아하스가 하나님 대신 앗수르를 의지할 때 벌어질 일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파리와 앗수르의 벌을 부르시겠다는 것입니다. 의지하려던 그 앗수르가 도리어 벌이 되어 쏘게 되고, 포도원이 있던 자리마다 찔레와 가시가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한 결과가 이렇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아하스의 눈에 두 나라는 온 나라를 삼킬 세력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연기 나는 부지깽이였습니다. 우리도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커 보입니다. 그때 붙들어야 할 말씀이 이것입니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다른 하나는 경건한 말 뒤에 불순종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 고집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말씀에 정직하게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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