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8-10:4절 /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26.07.27)

2026.07.2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11절)

7장에서 하나님은 남유다 왕인 아하스에게 앗수르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그러면 반드시 회복시키고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앗수르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북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보여주십니다. 남유다에서 예언하던 이사야가, 북이스라엘이 장차 겪을 일을 통해 남유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 보면 같은 말이 네 번 반복됩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9:12, 17, 21, 10:4). 이 네 번의 반복은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도 심판하시겠다니,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나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같은 말이 네 번 반복된다는 것은, 네 가지 부분에서 이 백성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8절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에 앞서 반드시 말씀을 보내십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9-10절.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합니다. 마음과 귀를 닫고 듣지 않습니다. 대신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경고로 벽돌이 무너지고 나무가 찍히는 일을 겪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너졌으면 더 좋은 것으로 쌓으면 되지”하며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다듬은 돌과 백향목은 벽돌과 뽕나무보다 훨씬 값진 것입니다. 심판을 겪고도 회개하기는커녕 자기 힘으로 더 크게 일어서겠다고 장담하는 교만입니다.

그 결과가 11-12절입니다. 하나님이 대적들을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시는데,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킵니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것입니다. 특히 북이스라엘과 연합했던 아람이 집어 삼키려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 의지하면 그것이 우리를 삼키려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습니다.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13절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리하여도’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치시는데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매를 맞으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돌아보아야 하는데, 여전히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고난이 왔을 때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고,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판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14-16절에서 하나님은 머리와 꼬리,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하루 사이에 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머리는 존귀한 자, 곧 장로와 지도자이고, 꼬리는 거짓을 가르치는 선지자입니다. 특히 16절은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고 합니다. 백성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도리어 미혹하니, 그를 따르는 백성이 함께 멸망합니다. 지도자의 타락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습니다.

●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10:3절)

세 번째, 18-19절은 그 악이 어떻게 퍼지는지를 불에 비유합니다. 악행이 불타오르는 것 같아서 찔레와 가시를 삼키고 빽빽한 수풀을 살라 연기가 치솟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씨가 온 숲을 태우듯, 죄악이 온 사회로 번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불탈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해하고, 형제가 형제를 공격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20-21절.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먹어도 배고프고 왼쪽으로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여, 마침내 “각기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지경에 이릅니다. 심지어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치고, 둘이 합하여 유다를 칩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본래 형제 지파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결국 서로를 뜯어먹고 형제가 형제를 치는 데까지 이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렇게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10:1-2절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궁핍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번에는 법과 제도를 가진 자들의 죄입니다. 법을 만들고 판결하는 권한을 가진 자들이, 그 힘을 약자를 보호하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약자를 짓밟는 데 씁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 가난한 자의 권리를 빼앗고, 과부의 것을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합니다. 1장에서 하나님이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하신 요구가, 정반대로 짓밟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죄가 바로 힘없는 자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3-4절에서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디에 두려느냐” 심판의 날이 오면 그 많던 재물과 권세를 어디에 두고 누구에게 도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약자에게서 빼앗은 그 모든 것이 심판의 날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포로들 아래 구푸리고 죽임당한 자들 아래 엎드러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네 번이나 반복되는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는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죄악이 가득합니다. 당장 심판하셔서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심판을 받으면서도 그 매를 드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도리어 멀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불의와 죄악이 일상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그런 시대 속에서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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