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21절)
지금까지 이사야는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였던 앗수르가 교만하여 심판받는다고 했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이제 남유다까지 삼키려 진격해 오는데, 하나님은 그 앗수르를 반드시 꺾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거기에 소망이 있다”입니다.
20절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하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의지하리니” 본문에 ‘남은 자’가 반복됩니다. 심판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이제는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진실하게 의지하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특히 22절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을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녀가 없던 아브라함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백성 가운데 정작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남은 자’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숫자의 많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도,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고, 도리어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드는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많은 무리가 아니라,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24절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남유다를 향하여 ‘내 백성아’라고 부르십니다. 비록 죄악 가운데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깨닫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게 공격해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가 앗수르에게로 옮겨져 그들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옛날 출애굽과 사사기 시대의 사건을 통해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을 치셨던 것처럼, 그리고 애굽에서 홍해를 가르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그 구원이, 지금 이 백성에게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27절 “그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앗수르의 공격은 남유다에게 무거운 짐이자 목을 짓누르는 멍에였습니다. 왕과 백성이 그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 짐을 어깨에서 벗기시고 멍에를 목에서 부러뜨리십니다. 그 이유가 ‘기름진 까닭’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기에, 그 풍성함으로 멍에가 부러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기름짐’이라는 말에 이사야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기름지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앗수르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힘이 더 든든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도리어 목에 멍에를 진 삭막하고 메마른 삶이었습니다. 기름진 삶을 좇아 하나님을 버렸는데, 얻은 것은 빼빼 마른 삶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더 나은 삶,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하나님을 뒷전에 두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붙드는 편이 더 안전하고 더 기름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기름지고 복된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 참된 풍요입니다.
●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33절)
28-32절까지는 여러 지명이 이어집니다. 이 지명들은, 앗수르 군대가 북쪽에서부터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오는 경로입니다. 한 성읍 한 성읍 무너뜨리며 점점 가까이 다가와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32절 “그날에 그가 놉에 서서 딸 시온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놉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앗수르가 거기까지 진격해 와, 예루살렘을 눈앞에 두고 공격하려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수도가 함락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이 장면을 이토록 생생하게 설명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바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니, 남유다 백성은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위기가 이르기 전에 돌이키라는 간절한 경고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향해 위협하며 손을 흔들던 그 앗수르는 어떻게 됩니까. 33-34절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예루살렘을 두렵게 하던 앗수르를 하나님이 혁혁한 위력으로 꺾으십니다. 울창한 삼림 같던 앗수르의 군대가 도끼에 찍히듯 쓰러지고, 그 높은 것이 낮아집니다. 실제로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를 치셨습니다. 아무도 무너지리라 상상하지 못한 그 최강대국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한순간에 베이는 나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앗수르는 결국 남유다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남유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내가 예언한 대로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쳤고, 또 내가 예언한 대로 그 앗수르가 멸망한다. 그러니 내 말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남유다야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남유다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돌아오라, 거기에 소망이 있다!”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무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많은 백성이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 때 하나님은 징계하시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드는 남은 자를 통해 뜻을 이루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며,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께 영광 돌리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서 있는지, 오늘 우리 자신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다른 하나는 혁혁한 위력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문턱까지 이른 최강대국조차 한순간에 꺾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혁혁한 위력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 어깨의 짐을 벗기시며, 대신 싸우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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