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1절)
하나님이 유다를 둘러싼 나라들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계속 말씀하십니다. 어제는 북쪽의 아람과 북이스라엘이었다면, 오늘은 남쪽의 나라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노예 생활하던 애굽, 그리고 그 너머 구스,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입니다.
1절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그 당시 구스는 애굽을 정복해 왕조를 이룰 만큼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은 무역선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 나라가 강하고 무역이 왕성한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구스 사람들이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민첩한 사절들을 여러 나라로 보냅니다. 이유는 앗수르가 점점 부강해지자 자기 힘으로는 안 되니 여러 나라와 손잡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절들을 향해 “너희 백성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2절이 복잡해 보이지만 의미가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사14:32절과 같습니다. 거기서도 블레셋이 사신을 보내 “서로 손잡고 앗수르를 대적하자”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고 답하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를 이기는 것은 연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온을 견고케 하심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신뢰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돌려보내라 하신 그 구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2절에 나옵니다. “장대하고 준수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강성한 백성”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손잡고 의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강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손잡고 싶어 하는, 든든해 보이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믿음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3절은 하나님이 산들 위에 깃발을 세우시고 나팔을 부시는 날이 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나팔을 부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하리니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세상은 어디를 의지할지 몰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하나님은 그 처소에서 조용히 세상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것 같고 잠잠히 감찰만 하시는 것 같은데, 그 잠잠함 속에서 하나님의 일은 놀랍게 이루어집니다. 5절 보면 추수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익어갈 때 하나님이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고 퍼진 가지를 찍어 버리십니다. 누구도 물리치지 못할 것 같던 앗수르를, 하나님이 이렇게 순식간에 찍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2절에 나왔던 그 장대하고 준수하고 강성한 백성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예물을 가지고 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 처음 남유다에 올 때는 “손잡고 앗수르를 대적하자”며 왔던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앗수르를 심판하시고 뜻을 이루시니, 이제 예물을 들고 하나님을 경배하러 시온에 오는 것입니다. 유다가 의지하려던 그 나라가, 도리어 하나님 앞에 경배하러 옵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나면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 의지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를 주시겠다고. 앗수르처럼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하나님이 손대시면 하루아침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해결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19:3절)
19:1절부터는 애굽에 대한 내용입니다. 1절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은 우상을 숭배했고, 특히 왕인 바로를 신의 아들로 여겨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임하시니 그 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고, 자기들이 대단하다 여기던 애굽인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앞에 엎드리고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2절은 그렇게 든든하던 애굽이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성읍이 성읍을, 나라가 나라를 치는 내분에 빠집니다. 3절 애굽인의 정신이 쇠약해지고 하나님이 그 계획을 깨뜨리시니, 그들은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묻습니다. 애굽이 그 큰 나라를 이룬 기초가 이런 미신과 우상이었는데, 하나님이 임하시니 그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실 때 가장 먼저 어디를 치십니까. 5-10절까지 반복되는 말이 바닷물, 강, 나일입니다. 애굽의 부강을 이룬 것이 나일강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강을 가장 먼저 치십니다.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잦아 마릅니다. 강에서 악취가 나고 강물이 줄어듭니다. 경제가 통째로 무너집니다. 어부들이 탄식하고, 그물 던지는 자들이 슬퍼하며, 세마포 만드는 자들까지 낙심합니다. 애굽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11-15절은 애굽의 지혜에 관한 것입니다. 애굽은 부강하면서 자기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지혜자들이 있으니 우리나라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혜’라는 말이 이 단락에 반복됩니다. 그러나 13절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지혜로 세운 나라가, 하나님이 한 번 손대시니 와르르 무너집니다.
특히 14절이 놀랍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애굽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고의 지혜로 곧바로 잘 가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지혜를 도리어 사용하셔서, 그들이 그 지혜 때문에 엉뚱한 길로 가고 결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무너지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결과가 이렇습니다. 지혜라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우리의 일상이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때 나는 내 생각대로 합니까, 말씀대로 합니까. 말씀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가곤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비틀거리며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씀의 지혜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장대하고 준수하고 강성한 것을 의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안과 두려움에 이리저리 요동할 때, 하나님은 그 처소에서 조용히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 삶에도 여러 일이 밀려오지만, 우리도 하나님처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반드시 능력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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