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4:1-13절 / 공허와 혼돈의 땅(26.08.11)

2026.08.1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1절)

오늘부터 이사야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4-27장까지를 흔히 ‘이사야의 묵시록’이라 부릅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을 다른 말로 묵시록이라 하는데, 감추어져 있던 것을 하나님이 드러내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이 핍박 가운데 “이 고통이 언제 끝납니까”라고 부르짖던 성도에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고 보여 주었듯, 이사야 24-27장도 혼란한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고 회복하실지를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잠깐 정리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1-6장은 유다를 향한 서론적 예언이었습니다. 7-12장은 아하스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유다를 향한 구체적 말씀, 13-23장은 유다를 둘러싼 열방을 향한 심판(바벨론에서 두로까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24-27장은 특정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 전체를 향해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1절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이 ‘공허’와 ‘황폐’라는 말이 3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기 전의 상태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공허’입니다. 하나님이 그 공허와 혼돈과 어둠에 손을 대시자, 공허가 채워지고 혼돈에 질서가 생기고 어둠이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지어진 세상 한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두셨습니다.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세상이 다시 공허와 혼돈으로 돌아갑니다.

1절 중간 ‘지면을 뒤집어엎으신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질서 있게 세워졌던 세상이 다시 무질서로 뒤집히는 것,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창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앞선 열방 심판이 개별 나라의 몰락이었다면, 여기서는 창조 질서 자체가 풀리는 우주적 심판이 일어납니다.

2절은 그 심판이 누구에게 임하는지 여섯 쌍의 대조로 보여 줍니다. 백성과 제사장, 종과 상전, 여종과 여주인, 사는 자와 파는 자,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입니다. 종교적 지위든, 사회적 신분이든, 경제의 처지든,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같은 상태에 놓입니다. 심판 앞에서는 누구도 자기 자리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 왜 이렇게 쇠하게 되었을까요? 4절에 ‘쇠잔’과 ‘쇠약’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받았던 땅과 사람이 도리어 시들어 갑니다. 5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땅이 더럽혀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영적·도덕적으로 오염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참으로 더럽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 마음속의 죄악의 쓰레기입니다.

그 죄악의 뿌리를 5절 중간이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율법을 범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기준대로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율례를 어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할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웠다는 것이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다는 것은 그 모든 불순종의 뿌리입니다. 세 표현이 결국 한 가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죄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 사이에 잘못한 것을 죄라 여기지만, 죄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특히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이 요청해서 맺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택하시어 먼저 맺어 주신 것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니 이 말씀대로 살라, 그러면 내가 너를 책임지고 열방 가운데 우뚝 세우겠다”는 은혜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감사한 언약을 백성이 스스로 깨뜨린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성도인 우리는 더 확실한 언약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언약입니다. 먼저 찾아와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약을 깨뜨린 결과가 6절입니다.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언약을 지키면 복인데, 깨뜨리니 저주가 임합니다. 다만 ‘남은 자가 적다’는 말에서, 하나님이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두신다는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11절)

7-13절까지는 그 심판의 구체적 모습인데, 반복되는 것이 ‘기쁨의 그침’입니다. 7절 마음이 즐겁던 자가 탄식하고, 8절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며 수금 타는 기쁨이 그칩니다. 11절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기쁨과 탄식이 뚜렷이 대조됩니다. 이 대조에 담긴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언약 백성으로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바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을 깨뜨리니 그 기쁨이 탄식으로 바뀝니다. 7절,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합니다. 포도 열매가 맺혀야 즙을 짜는데, 나무가 말라 열매가 없으니 즐거움도 마르는 것입니다. 10절에서는 약탈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 들어가는 자가 없습니다. 안으로는 소출이 마르고 밖으로는 약탈당하여, 안팎으로 기쁨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13절이 그 심판의 강력함을 비유로 말합니다.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으리라” 감람나무를 세게 흔들면 열매가 다 떨어지듯, 포도를 거둔 뒤 이삭줍기하듯 몇 알만 남듯, 하나님이 세상을 흔드시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것이 떨어지고 남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도 ‘남은 것’이라는 표현이 완전한 소멸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세상을 공허하게 하는 것이 죄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의 세상을 채우시고 질서와 빛으로 만드셨는데, 그 세상이 다시 공허와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저지르는 크고 작은 죄악이 우리를 혼란스럽고 공허하게 하며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니 복을 구하기 전에, 삶의 작은 일에서부터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른 하나는 진정한 기쁨이 말씀 안에 있음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과 평안을 원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율례를 지키며 영원한 언약을 붙들고 살아갈 때 참된 기쁨이 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이지만, 말씀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마르지 않는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먼저 붙들고, 서로 그 말씀 안으로 이끄는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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