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17절 / 잠잠하고 신뢰하라(26.08.20)

2026.08.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1절)

이사야 28-33장은 여섯 번 반복되는 ‘화 있을진저’의 경고입니다. 오늘 30장은 네 번째로, 하나님이 남유다를 향해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부르시며 시작합니다.

이사야서는 처음 1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소도 나귀도 자기 주인을 아는데, 이 백성은 자기를 기르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30장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서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데, 유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는 패역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패역한 자식입니까? 1절 “그들이 계획을 세우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여 죄에 죄를 더하도다”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께 묻지 않고, 다른 나라와 언약을 맺되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합니다. 2절 끝도 그렇습니다.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이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일을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그렇게 결정한 일은 2절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게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합니다. 당시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유다를 위협하자, 유다는 두려움에 떨며 남쪽의 애굽을 의지해 앗수르에 맞서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 묻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으면 하나님이 분명히 허락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애굽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아예 묻지 않고 제 뜻대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이 곧 죄입니다. 어떤 일을 하며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생각과 욕심대로 결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강해지리라 여긴 그 애굽이 도리어 수치가 됩니다. 3-5절에 ‘수치’와 ‘수욕’이 반복됩니다. 바로의 세력이 수치가 되고, 애굽의 그늘이 수욕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5절보면 그 민족은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도와줄 것 같고 힘이 될 것 같지만, 그 강대국이 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6-7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한 편의 시로 설명하십니다.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네겝은 유다 남쪽의 사막 지역입니다. 그 광야를 배경으로, 애굽과 맹약을 맺으려는 사신단이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보물을 낙타 안장에 싣고 애굽을 향해 내려가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 길은 암사자와 수사자,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뱀이 도사린 위험한 사막 길입니다. 그 뙤약볕과 맹수의 길을 뚫고, 선물을 잔뜩 실은 채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 길은 과거 이스라엘이 거꾸로 걸어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열 가지 재앙의 능력으로 애굽의 노예에서 벗어났고, 이 광야 길을 지나 약속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는 자기들이 구원받고 자유를 얻었던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애굽을 의지하고 그 속박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이 자유를 주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셨는데, 그 하나님을 버리고 옛 종살이의 땅을 다시 붙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이 역출애굽의 그림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7절은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라합은 신화 속 바다 괴물의 이름입니다. 괴물이니 겉으로는 무섭고 위력적일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 곧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만 있는 괴물이라 부르십니다. 이름값은 사나운 괴물이나 실상은 무력한 존재라는 조롱입니다. 눈에 보이는 애굽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15절)

그러면 유다는 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애굽으로 달려갑니까. 28장부터 반복되는 남유다의 근본 죄가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들어도 그대로 살지 않습니다. 9절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합니다. 뿐만 아니라 10-11절에는 이들이 선견자에게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고 거북하니, 회개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부드러운 말을 하며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합니다. 여기 ‘부드러운 말’은 듣기 좋고 매끄러운 말, 마음을 찌르지 않는 말입니다. 그리고 11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 앞에 계신 것 자체가 부담스러우니, 아예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8-30장에 반복되는 유다의 핵심 문제입니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말씀 들어서 뭐 하나, 그대로 산다고 삶이 달라지겠나”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결국 말씀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이 백성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갈림길이 됩니다.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순종하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말씀을 업신여긴 결과를 13-14절이 두 개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12절에서 백성이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의지했다고 하는데, 13절은 그 결과를 높은 담이 제 무게를 못 이겨 갑자기 불룩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스스로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것입니다. 14절은 토기장이가 그릇을 사정없이 깨뜨려 아궁이의 불을 옮길 조각 하나, 물을 뜰 조각 하나 남지 않는 것에 비유합니다. 무너짐과 깨어짐,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자가 겪을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15절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외면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진지하게 그들의 살 길을 일러 주십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세상을 의지하고 애굽으로 달려가던 데서 ‘돌이키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조용해도 마음이 조용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조용히 있으려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조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앗수르보다 훨씬 크고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내 삶을 어떻게 책임지시는지를 신뢰할 때, 그 내면에서 힘이 솟아 요동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5절과 16절이 대조됩니다. 조용히 머물기를 거부한 유다가 택한 것은 16절,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 앞에 머무는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니, 결국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16절에 ‘빠르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되는데, 빠른 말을 타고 분주히 내달리지만 그 분주함은 쫓기며 도망 다니는 것입니다. 돌이켜 조용히 머무는 자는 구원과 힘을 얻고, 돌이키지 않고 내달리는 자는 도망자의 삶을 산다는 대조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을 듣는 자리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제 뜻대로 애굽을 의지한 데서, 그리고 말씀 듣기를 싫어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돌이켜 조용히,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요동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때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에서 돌이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물고 잠잠히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구원과 힘을 얻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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