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1절)
오늘부터 사사기를 묵상합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인데, 이 책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시대에 왕이 없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어, 하나님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을 세우셨는데 그들이 사사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혼란했던 시대가 바로 이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기를 이해하려면 창세기부터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시며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땅과 민족입니다. 세상 나라와 다른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 민족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야곱의 70식구를 애굽으로 옮기셨고, 400년의 노예 생활 동안 이스라엘은 번성하여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민족은 이루어졌으나 노예였던 그들을, 하나님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워 출애굽시키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의 불순종으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를 정복하는 일은 단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가나안을 차지했으나, 구석구석은 아직 다 점령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사기가 시작됩니다.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강력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성을 이끌던 지도자의 죽음은 큰 충격입니다. 이제 남은 정복 전쟁을 지도자 없이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웠는데, 왜 여호수아는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떠났을까요. 이것을 여호수아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왕을 세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좋은 지도자가 세워지면 나라가 평안하지만,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온 백성이 신음합니다. 처음에는 선하게 시작한 왕도 권력이 생기면 교만해지고 변질되는 일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왕이 없어도 하나님이 참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루길 원하셨습니다. 주변 나라는 다 왕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왕 없는 이스라엘이 왕 있는 나라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올 때까지는 인간 지도자를 세우셨지만, 들어온 뒤로는 각 지파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흩어져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지도자가 없는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보인 첫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도자를 급히 세우거나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지 않고, 백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묻습니다. 1절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정복 전쟁을 앞두고 어느 지파가 먼저 나갈지를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하나님이 여러 지파 가운데 유다를 먼저 세우신 것은, 숫자도 가장 많지만 앞으로 유다 지파를 통해 이스라엘을 이끄실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윗과, 그 계보에서 나실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서 열심히 싸워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2절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미 그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구약 백성의 삶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됩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셨는데, 백성이 가서 보니 가나안 족속은 크고 성은 견고하여 “우리 힘으로 못 하겠다”며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쟁하기 전에 이미 “내가 넘겨주었다” 하시며, 군사력이 많든 적든 무기가 좋든 아니든 신경 쓰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하십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에 우리가 순종함으로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유다는 시므온지파와 함께 기기를 원합니다. 3절에 ‘함께’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이런 유다의 선택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가라고 했는데 함께 갔고,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데 한 지파만 데리고 간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분배된 지도를 보면 시므온은 유다지파 안에 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묵상하다보면 이렇게 해석이 모호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때 우리 기준으로 너무 많이 나가지 않고 성경이 어디까지 말씀하시는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4절은 전쟁 결과를 단순하게 전합니다.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 그들의 손에 넘기시니”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초점은 ‘유다가 잘 싸워 이겼다’가 아니라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넘기셨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넘겨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유다가 순종하여 올라가니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7절)
그런데 이 승리의 이야기 뒤에 어두운 그림자가 이어집니다. 유다가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이라는 왕을 사로잡았는데, 6절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른 이유는 다시는 전쟁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기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라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상대를 굴복시킬 때 쓰던 풍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승리한 뒤에 가나안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죄악이 가득한 땅이라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진멸하는 대신 가나안식으로 손가락을 잘라 살려 둠으로써, 자기 아래 굴복시키며 그들의 풍습을 닮아 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에게 가장 엄히 경계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풍습을 따라 하면 큰일 난다, 그들이 그 죄 때문에 쫓겨나는데 너희가 그들을 닮으면 너희도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가 아도니베섹의 입을 통해 주어집니다. 7절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그가 옛날에 일흔 왕에게 잔인하게 행한 그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갚으셨다고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원리는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사사기는 시작에서부터 강조합니다.
8절 이후는 유다의 정복이 계속 이어집니다.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합니다. 10절에는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입니다. 이 세 사람은 아낙 자손, 곧 거인 족속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를 두려워하게 만든 공포의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대상이 마침내 무너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먼저 약속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 형편을 보고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순종함으로 그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닮아가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순종하는 모습과 함께, 사사기의 시작부터 가나안의 풍습을 닮아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세상을 닮아가는 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 결국 이스라엘을 혼란으로 몰아갑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 살되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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